IMF돌풍에 직장을 잃은 한 남자가 가상현실 창업구상에 몰두하다 아이맥스
영화관엘 들렀다.

봄빛이 환한 대낮, 초대형 화면을 쳐다보며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던 그는
갑자기 웜홀(차원변동 구멍)로 빨려든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주인공이 곁에 있다.

그는 앨리스에 이끌려 여러 곳의 가상현실을 방문한다.

첫번째 "허구현실"에서는 영화 "리틀빅 히어로"(스티븐 프리어즈감독)의
주인공들을 만나고 두번째 "가상현실"에서는 "비디오드롬"(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을 체험한다.

"게임현실"에서는 "주만지"(조 존스톤), "병행현실"에서는 "칵테일 인생"
(제임스 오르), "다차원 현실"과 "팽창현실"에서는 "꿈의 구장" "미야자와
조우" "이티"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지막 "유연현실"을 거쳐 현재로 돌아온 그는 실업자로서의 위기감과
창업지망생으로서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발상을 떠올리게 된다.

평론가 김용호(41)씨가 계간 "문예중앙"여름호에 발표한 가상현실 패러디
소설 "이상한 영화나라의 앨리스".

이 작품은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주인공을 통해 세기말과
IMF의 그림자에 눌린 우리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21세기, 우리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예고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소설 형태를 취한 비평문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 것"이라며 "새로운
글쓰기의 실험장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근대과학의 현실개념을 넘어서는 영화들을 뽑아 물리학과 불교의 현실에
접목시킨 것입니다"

그는 현실을 "딱딱하게 굳은 것"으로만 인식하면 열린 사고가 불가능하다면
서 "우리의 눈길과 촉감이 모두 현실을 창조하고 재생산하는 촉매"라고
얘기한다.

자유로운 현실개념을 가져야 정보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IMF사태도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사고의 근본적인 전환이야말로 미래사회와 신산업을 발전시키는
지렛대"라며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