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및 저압 선로 결상정보 재투입장치"라는 신기술 제품이 있다.

일종의 전기감시장치로 전기공급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선로에 전기를
자동으로 다시 넣어주는 기능을 갖췄다.

기존 제품은 전기 자동차단기능과 경보기능만 있었다.

이 제품은 대구에 있는 전기부품업체 영남전기공사가 개발해 산업자원부로
부터 "전력신기술 2호"로 지정받았다.

이 회사는 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얼핏 보기엔 전혀 관련이 없는 자동차
부품업체 성우정밀과 협력했다.

아이디어와 기술은 있었지만 부품배치와 회로디자인 노하우가 모자라 애를
먹던 차에 그쪽에 경험이 많은 성우정밀의 지원을 받은 것이다.

김명동 영남전기 사장은 "성우정밀의 협력이 없었다면 상품화에 성공하기
어려웠을 터이고 혹 상품이라고 내놓았더라도 지금만 훨씬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건축자재업체 신화는 철판 절단라인의 생산성이 떨어져 고민하던중
은성산업으로부터 자동절단시스템 노하우를 배워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페인트업체인 서울기업은 플라스틱업체인 행성사와 서로 기술을 합쳐
새로운 도료를 개발중이다.

여러 회사가 사보와 디자인을 맡을 회사를 함께 세운 경우도 있다.

각자의 기술을 한데 모아 신상품을 개발할 회사를 공동 설립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협력을 통해 품질이나 공정 개선을 꾀하는 사례는 셀 수 없을만큼
많을 정도다.

이처럼 업종이 서로 다른 중소기업들끼리 힘을 합치는 "이업종 협력"에
공식집계만해도 5천개가 넘는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가히 새로운 중소기업 경영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업종 협력의 시작 단계는 경영이나 기술 정보를 교환하거나 생산및
실험설비를 빌려쓰는 것이다.

나아가 판로를 함께 개척하기도 하고 전문인력을 파견해 노하우를 가르치고
배우기도 한다.

역할을 나눠 신기술 또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이업종 협력은 같은 협력이라도 하청이나 외주와는 사뭇 다르다.

서로가 가진 정보와 기술노하우등을 "툭 까놓고" 일을 해나간다는 점이
그렇다.

경험이 다양한 업체끼리 정보를 주고 받다보니 혼자선 이루기 어려운
성과를 내는 경우도 많다.

물론 하청이나 외주로도 다른 회사의 기술을 자기 제품에 담아낼 수 있다.

그러나 계약한대로만, 또 받은만큼만 힘을 쏟는 것이 하청과 외주의 한계다.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의 문제점이나 업계 현황따위를 알려주는데는 인색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업종 협력은 같은 업종의 기업들이 조합이나 협회를 만들어 이익을
도모하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서로 경쟁관계가 아니라 허심탄회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그렇다.

기술과 노하우를 굳이 숨기지 않아도 돼 최상의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동업종 협력을 통해 덩치가 커지는 데서 오는 이익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면 이업종협력으론 "다양성의 경제"를 꾀할 수 있다.

각자가 갖고 있는 기술과 설비 영업조직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새 사업을
벌이더라도 각자의 초기투자 비용이 적다는 점은 또 다른 매력이다.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으니 경기침체로 불확실성이 커진 요즘 더욱 눈길을
끄는 경영전략이 아닐 수 없다.

혼자 필요한 부분을 다 해야 하는 것에 비하면 신제품 또는 신기술 개발
기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갈수록 다양해지는 소비자들의 요구와 짧아지는 제품및 기술 주기 등
급변하는 시장여건에 알맞은 경영방식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업종 협력에도 사업화에 성공하면 이익은 어떻게 나눌지 또 실패하면
책임은 누가 질지하는 문제에 부딪칠 가능성은 있다.

문제는 동업종 협력보다 문제가 복잡하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책임과 분배문제 등을 정확히 매듭지어 두는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정차관리용 자동차바퀴잠금장치"를 개발한 만호산업사와 협력업체들의
경우 아예 지분을 출자해 에이시엘이란 독립 회사를 만들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 김용준 기자 dialec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