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유럽투자확대를 결정하고 구체적인 부지선정에 나선 96년.

김충배 LG전자 이사는 유럽의 30개지역을 놓고 실무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영국쪽으로 가닥을 잡아가자 영국의 각 지방에서 치열한 유치공세를 해왔다.

웨일즈 북잉글랜드 북아일랜드 등이 김 이사를 잡기위해 달려들었다.

각각 파격적인 조건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초 웨일스를 최종 선택하자 웨일스개발청(WDA)은 공장완공때까지
1년간 청사 2층 전체를 무상 사용토록 했다.

전화 팩시밀리사용은 물론 30여명의 직원에게 개인별 주차공간까지 배정
했다.

모두 무료였다.

당시 김 이사의 방은 웨일스개발청장실보다 규모가 컸을 정도다.

영국은 아직 월드컵에 독자적으로 출전할 정도로 독립적인 지방정부를
갖고 있는 나라.

웨일스는 고유의 언어를 아직 쓰고 있으며 스코틀랜드는 별도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돈을 사용한다.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적 산물이지만 경제적인 차이도 적지 않은 탓이다.

때문에 각 지방정부들은 독자적으로 외국인 투자유치기관을 세워 다른지방
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사생결단식으로 뛰고 있다.

이렇게 생긴 지방차원의 외국인투자유치관은 모두 11개.

웨일스의 WDA, 스코틀랜드의 LIS, 북아일랜드의 IDB 등 주마다 이름도 각각
이다.

같은 잉글랜드안에서도 지역 정서가 비슷한 곳끼리 한데 모여 북부산업개발
공사(NDC) 서부산업개발공사(WED) 등을 설립, 유치활동을 벌인다.

가장 먼저 생긴 곳은 웨일스개발청.

지난 76년 주정부 산하기관으로 설립됐으며 활동실적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발청의 임무는 낙후된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입니다.

이를위해 해외기업 투자유치와 지역개방을 병행하지요"라는 나이질 휘첼로
부청장은 "개방창 설립이후 경제가 좋아지자 개발청이 웨일스에서 가장
막강한 기관이 됐다"고 말한다.

인구 2백90만명으로 영국 전체의 5%에 불과한 웨일스는 주정부차원에서
개발청에 집중투자한 덕에 영국으로 들어오는 해외투자의 20%를 유치했을
정도다.

웨일스개발청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기능고도화차원에서 지역별로
구분하던 투자유치조직을 업종별로 재편하는 등 끊임없이 변신하고 있다.

지역내 대학 연구소 기업체를 긴밀하게 연결시켜 웨일스경제의 중추신경으로
자리잡아 나가면서...

또하나의 모델은 북잉글랜드의 NDC.

86년 닛산자동차가 이 지역에 투자할때 지방정부 차원에서 도와주던 기구를
공식화한 조직이다.

북잉글랜드지역은 NDC 설립이전인 76-86년 10년간 18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주력인 석탄 조선산업이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겨우 살아남은 브리티시철강조차 인원수가 4분의 1로 줄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33개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NDC를 설립한 이후 10년간 8만명이
새로 고용됐다.

한국투자가들의 편의를 위해 한국인직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연간 7백만파운드의 예산을 사용하는 힘있는 조직이다.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외국기업유치는 일부 업종에만 의존하던 산업구조를
전자 자동차 화학 섬유 등으로 다양화해 경기후퇴때 급격한 위기를 맞지않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는게 데이빗 보울즈전무의 설명이다.

WDA NDC같은 각 지방기관의 경쟁은 기본적으로 자유경쟁이다.

바꿔 말하면 외국투자자들에겐 가장 좋은 조건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원칙없는 출혈경쟁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차원에서 지방의 외국인투자유치를 지원해 주지만 때론 과당경쟁을
조정해 준다.

이런 역할을 하는 기구가 대영 투자유치국(IBB).

직제상으로는 상무부 소속이며 예산도 상무부에서 받는다.

하지만 상무부와 외무부에서 동시에 직원을 파견받아 운영되고 업무결과도
두 부서장관에게 모두 보고하는 이원조직이다.

상무부와 외무부의 공동조직인 만큼 지방투자유치기관과의 유기적인 관계는
물론 해외업무의 조정기능까지 한다.

마이크 폴티어스 IBB 아시아태평양담당국장은 "IBB는 영국을 세일즈하고
지방개발청은 그 지방을 파는 것일뿐 상하관계는 아니다"며 "어떤 해외기업이
유럽투자결정을 하면 우리는 영국이 좋은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후보지역의
장단점을 얘기해준다"고 말한다.

"어느 지방이든 영국에만 유치하면 된다는게 IBB의 생각"이라는 그의 말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조화로운 역할분담을 느끼게 해준다.

외국인투자 유치를 통해 실업해소뿐 아니라 지방간 균형있는 발전도
꾀하려는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 런던=육동인 기자 dongi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