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지금의 자금조달 환경을 "한계상황"으로 보고 있다.

일부는 이달내에 상당수 흑자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는 사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재계는 그래서 정부가 2일 기업자금난을 덜기 위해 은행들의 대출을
독려키로 한데 대해 "다행"이라면서도 만족해 하지는 않는 표정이다.

기업을 신용위기에서 확실하게 벗어나게 하는 특별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재계가 이처럼 불안해 하는 이유는 마비된 금융시스템을 복원하지 않고는
모든 대책이 미봉책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우선 9월까지 추진될 금융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자금공급
활동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발행분 상환을 위한 차환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회사채 만기액은 계속 늘어나게 돼있다.

2.4분기에 4조8천4백억원인 회사채 만기도래액은 3.4분기엔 5조3천6백억원
으로 증가한다.

4.4분기엔 8조7천4백억원이 만기를 맞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금융기관 신용경색->기업자금난 가중->기업부도 확산->
금융기관 부실채권 증가->금융기관 부실화->금융기관 신용경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기업과 금융이 동시에 부실화되는 가운데 산업기반이 붕괴되는 장기불황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재계의 우려다.

실제로 이미 이런 조짐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보면 된다.

모그룹 관계자는 "3월이후엔 한 푼도 제대로 꿔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만기가 돌아오지 않은 기존대출금을 갚으라고 해 은행을 설득
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통계상으로도 이런 상황은 그대로 드러난다.

은행 신탁 보험 등 전금융기관의 대출이 3월 이후엔 사실상 중단됐다.

아니 오히려 줄었다.

3월의 경우 은행대출이 2월보다 1조4천8백70억원 줄어든 것을 비롯
상업어음 신탁대출 보험대출 등을 합해 금융기관의 대출총액이 2월보다
3조2천억원 감소했다.

이는 4월에도 이어져 3월보다 대출총액은 2천억원 이상 줄었다.

회사채도 마찬가지다.

은행 종금사 등의 회사채 지급보증업무가 사실상 중단돼 발행 자체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폐쇄된 종금사의 지급보증을 받아 발행됐던 회사채는
가교종금사로 지급보증업무가 승계되지 못해 기업들은 회사채 인수기관으로
부터 현금상환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4분기중 회사채 발행총액은 5조4천3백52억원.

총액으로 보면 전년 동기에 비해 2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80%는 신용이 우수한 4대그룹이 발행한 것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은행들이 지급보증을 거부하는 바람에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오히려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를 상환할 차환회사채 발행을
못해 부도위기를 맞고 있을 정도다.

증시를 통한 조달환경도 다를 것이 없다.

지난 1.4분기의 유상증자액은 1조5천3백5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배가 넘게
늘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99%가 금융기관의 증자였다.

기업의 유상증자는 없었다고 보면 된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