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달라진다] (9) 2부 : 흔들리는 사회 <3> 귀거래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현대판 귀거래사 ]]
농촌으로의 "U턴"붐이 거세다.
앞뒤 안가리고 도시로 향하던 70년대와는 정반대 현상이다.
정리해고 등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이 새삶을 시작해보겠다고 대거 농촌으로
몰리는 것이다.
마지못한 U턴이고보니 이들의 "귀거래사"는 애달프다.
개중에는 삭막해져만 가는 도시가 싫어 떠나는 "흙에 살리라 파"도 있다.
전남대 상대를 나와 인천 남동공단내 공장자동화설비업체 H정공에서
경리과장으로 일하던 김광수(35)씨.
회사가 부도나 퇴직금 한푼 못받고 내밀린 것은 지난해말.
일자리를 구하러 몇달동안 이리저리 뛰었다.
하지만 오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급기야 지난 4월엔 은행빛을 갚기 위해 전세조차 줄여야 했다.
그래도 뾰족한 수가 없어 귀향을 결심했다.
고향인 전남 함평으로 내려가기로 한 것.
"농사지으려고 당신한테 시집온 줄 아느냐"며 떼쓰는 아내를 "경기가 풀려
새직장이 생길때까지만"이라며 달랬다.
김씨는 "사실 다시 직장을 잡을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갈 여섯살짜리 딸의 교육도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중견기업인 S사 이사로 재직하다 지난 1월중순 명예퇴직당한 최형철(53)씨.
그는 "창립멤버로 들어가 철야근무 등 온몸을 던져 일했는데 나이먹었다고
내치다니"하는 분한 마음에 두어달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가게 하나 낼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서울이 싫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정직한 땅"을 일구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퇴직금으로 고향인 경남 합천에 아담한 농가와 논밭 이십여마지기를 샀다.
막상 고향에 왔지만 마음이 늘 편한 건 아니다.
괭이자루를 잡아본지 하도 오래돼 힘든 농사일이 마음같지만은 않다.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올들어 하루 평균 10집이상이 농촌으로 이사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 한해동안 4천가구정도가 귀농할 전망이다.
몸만 옮겨 농사일을 하는 사람은 훨씬 많이 늘었다.
지난 2월 농어업 취업자수가 그 전달에 비해 10만여명이나 늘었다는 노동부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다른 업종은 매달 10만~20여만명씩 줄어드는 판인데.
그래서 "현대판 귀거래"란 유행어가 나왔다.
가수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란 노래도 자주 들린다.
예비 귀거래자들도 많다.
지난 3월말 접수를 끝낸 서울시 농촌지도소의 "농촌정착 무료교육"엔
7백50여명이 몰렸다.
정원의 3배나 되는 수였다.
농촌진흥청 농협 축협등이 실시하는 단기 영농교육에도 예전과 달리
신청자가 폭주하고 있다.
서점에서도 귀향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담은 책이 한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벤처영농"이니 "영농공동체"니 하는 기사들도 신문지면을 자주 장식한다.
여차하면 도시를 뜰 "잠재 귀농자"도 숱하다.
직장인의 10%정도는 실직하면 농사를 지을 작정을 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현대리서치연구소가 올해초 성인 5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재취업"이나 "창업"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귀농"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촌으로 복귀한 사람중 20, 30대가 절반이 넘는다"고
밝혔다.
지난 2월말까지 귀농한 5백86가구를 분석한 결과 가장의 나이가 30대이하인
경우가 3백32가구로 전체의 57%나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귀향"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농사를 제대로 지을수 있을지, 농사를 지어 먹고 살수 있을지, 또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할지 새로운 고민들이 가로막고 있다.
"귀거래"는 결국 마지막 피난처인 셈이다.
이들에게 충남 괴산군 청천면 영농공동체 "솔뫼농장"의 이삼택 총무(39)는
"귀농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며 "만족할만한 소득을 올리려면 귀농전에
영농기술을 배우는 등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 김용준 기자 dialec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일자 ).
농촌으로의 "U턴"붐이 거세다.
앞뒤 안가리고 도시로 향하던 70년대와는 정반대 현상이다.
정리해고 등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이 새삶을 시작해보겠다고 대거 농촌으로
몰리는 것이다.
마지못한 U턴이고보니 이들의 "귀거래사"는 애달프다.
개중에는 삭막해져만 가는 도시가 싫어 떠나는 "흙에 살리라 파"도 있다.
전남대 상대를 나와 인천 남동공단내 공장자동화설비업체 H정공에서
경리과장으로 일하던 김광수(35)씨.
회사가 부도나 퇴직금 한푼 못받고 내밀린 것은 지난해말.
일자리를 구하러 몇달동안 이리저리 뛰었다.
하지만 오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급기야 지난 4월엔 은행빛을 갚기 위해 전세조차 줄여야 했다.
그래도 뾰족한 수가 없어 귀향을 결심했다.
고향인 전남 함평으로 내려가기로 한 것.
"농사지으려고 당신한테 시집온 줄 아느냐"며 떼쓰는 아내를 "경기가 풀려
새직장이 생길때까지만"이라며 달랬다.
김씨는 "사실 다시 직장을 잡을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갈 여섯살짜리 딸의 교육도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중견기업인 S사 이사로 재직하다 지난 1월중순 명예퇴직당한 최형철(53)씨.
그는 "창립멤버로 들어가 철야근무 등 온몸을 던져 일했는데 나이먹었다고
내치다니"하는 분한 마음에 두어달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가게 하나 낼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서울이 싫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정직한 땅"을 일구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퇴직금으로 고향인 경남 합천에 아담한 농가와 논밭 이십여마지기를 샀다.
막상 고향에 왔지만 마음이 늘 편한 건 아니다.
괭이자루를 잡아본지 하도 오래돼 힘든 농사일이 마음같지만은 않다.
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올들어 하루 평균 10집이상이 농촌으로 이사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 한해동안 4천가구정도가 귀농할 전망이다.
몸만 옮겨 농사일을 하는 사람은 훨씬 많이 늘었다.
지난 2월 농어업 취업자수가 그 전달에 비해 10만여명이나 늘었다는 노동부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다른 업종은 매달 10만~20여만명씩 줄어드는 판인데.
그래서 "현대판 귀거래"란 유행어가 나왔다.
가수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란 노래도 자주 들린다.
예비 귀거래자들도 많다.
지난 3월말 접수를 끝낸 서울시 농촌지도소의 "농촌정착 무료교육"엔
7백50여명이 몰렸다.
정원의 3배나 되는 수였다.
농촌진흥청 농협 축협등이 실시하는 단기 영농교육에도 예전과 달리
신청자가 폭주하고 있다.
서점에서도 귀향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담은 책이 한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벤처영농"이니 "영농공동체"니 하는 기사들도 신문지면을 자주 장식한다.
여차하면 도시를 뜰 "잠재 귀농자"도 숱하다.
직장인의 10%정도는 실직하면 농사를 지을 작정을 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현대리서치연구소가 올해초 성인 5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재취업"이나 "창업"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귀농"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촌으로 복귀한 사람중 20, 30대가 절반이 넘는다"고
밝혔다.
지난 2월말까지 귀농한 5백86가구를 분석한 결과 가장의 나이가 30대이하인
경우가 3백32가구로 전체의 57%나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귀향"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농사를 제대로 지을수 있을지, 농사를 지어 먹고 살수 있을지, 또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할지 새로운 고민들이 가로막고 있다.
"귀거래"는 결국 마지막 피난처인 셈이다.
이들에게 충남 괴산군 청천면 영농공동체 "솔뫼농장"의 이삼택 총무(39)는
"귀농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며 "만족할만한 소득을 올리려면 귀농전에
영농기술을 배우는 등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 김용준 기자 dialec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