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신화"는 무너졌다.

IMF 한파는 국민생활 곳곳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특히 부동산 시장을
침체의 늪으로 밀어넣고 있다.

IMF 관리체제가 시작된지 꼭 6개월.

부동산 시장은 스스로 자생력을 찾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위기에 직면했다.

이같은 위기상황은 이제까지 부동산 시장에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새 아파트 값이 분양가보다 낮은가 하면 세입자가 이사하고 싶어도 맘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대로변의 반듯한 나대지가 공시지가 절반 값이라야 겨우 팔리며 천정부지로
치솟던 서울 요지 상권의 "프리미엄"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모델하우스의 청약열기는 해약사태로 바뀌었고 택지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던 중개업소는 앞다퉈 철수하고 있다.

<> 부동산 신화 붕괴속에 새로 짜여지는 시장질서

이처럼 부동산 신화가 깨지고 부풀어 올랐던 거품이 제거되는 와중에서도
새로운 시장질서가 창출되고 있다.

주택시장이 "수요자 우위의 시장(Buyer"s Market)"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를 당첨받으면 곧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다는 등식이 깨지며 "공급자
우위의 시장(Seller"s Market)"은 불과 몇달만에 옛 얘기가 돼버렸다.

또 아파트 분양가 제도등 각종 규제가 풀어지면서 순수한 경제논리에 따른
시장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새판이 짜여지는 조짐은 이미 여러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세미텔 외국인임대주택사업등 "소액다품종"의 수익형 부동산 상품이 인기를
끄는 것이다.

세미텔은 독신자등을 위한 2~5평짜리 방으로 냉장고 TV 등 기본 생필품을
갖추고 있다.

수요자는 몸만 들어와 보증금 대신 25만~40만원의 월세만 내면 된다.

콤팩트한 공간에 목돈을 들이지 않고 월세를 내면 되는, 공급자와 수요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IMF형 상품이다.

<> 부동산에 대한 인식의 전환

새로운 시장질서는 부동산을 보는 일반 수요자와 기업들의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생활수준에 맞춰 집크기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또 막연한 땅값 상승기대 심리가 수그러드는 대신 현재의 수익성과 환금성
을 따지는 수요자들의 안목도 크게 높아졌다.

투자자 스스로 전세나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목돈을 받아 부동산에 재투자
하는 순환의 고리를 끊고 자금흐름을 선순환시키는 상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의 부동산 투자 마인드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시세차익을 노려 부동산 매입에 열중하던 기업들이 이로인해 고통을
받게 되면서 부동산 매입에 썼던 정력을 외자유치와 구조조정에 쏟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속성상 처분에 시간이 걸리고 매매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 인식되고
있는 탓이다.

어느 한곳이 막히면 줄줄이 쓰러지는 부동산의 도미노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것도 인식변화의 큰 요인이다.

"IMF이후 아직까지 혼란스런 문제들이 많지만 분명 새로운 질서와 관행을
찾으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반 수요자는 물론 기업들이 이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경영방침으로 새로운 질서와 관행을
만들어 낼 겁니다"(대우경제연구소 한용석 연구위원)

<> 부동산 시장의 선결과제와 나가야할 방향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산적한 것도 사실이다.

부동산관련 금융상품 개발이나 부동산거래 관행의 개선 등이 그것이다.

공급물량 조절로 주택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이제 버리고 선진국과
같이 주택금융의 개발과 지원을 통해 주택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선행
돼야 한다.

임대주택제도를 활성화시켜 내집만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르는 폭등현상을 억제,임대주택에 살아도 상대적
소외감이나 불안감이 들지 않도록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낙후된 부동산 거래관행을 선진화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양도소득세를 피하기 위한 이중 계약서가 판칠 정도로 우리의 부동산 거래
관행이 국제규범에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부동산 거래관행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부동산 투자에도 걸림돌
이 되고 있어 외자유치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개선돼야할 부분이다.

"정부는 부동산에 대한 규제보다는 국토개발계획의 큰 틀에서 토지가
생산성있게 개발되도록 유도하고,땅값 급등현상을 막아내는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국토개발연구원 정희남 박사)

앞으로 우리의 일상 생활에는 물론 부동산 시장에도 필연적으로 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건국이후 최대의 시련이라는 IMF시대를 살기 위해선 과거의 행동양식과
가치관은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집에 대한 인식을 소유에서 거주개념으로 바꾸고 땅을 투기대상이 아닌
생산과 고용창출의 기본재로 보는 시각을 유도하고 이에 맞는 제도를 내놓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 방형국 기자 bigjob@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