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를 베이스로 하는 국제투기자본이야말로 각국 외환금융위기의 속발을
야기한 중대한 외부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IMF프로그램이 자기합리화의
근거로 삼고 있는 내부결함론에서 전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동아시아에는 결코성장의 신화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폴 크루그만
의 "생산성 신드롬"이 우리의 현상인식과 대안모색을 철저히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부즈.알랜.해밀턴의 보고서, 최근 국무총리까지 참석하여
대성황리에 발표된 맥킨지의 보소서는 모두 크루그만의 아류일 뿐이다.

"한국은 서구에 대한 지식격차 때문에 저임금의 중국과 기술의 일본 사이
에서 압살되고 말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일한 수준으로 요소를 투입하고 있지만 생산성은 절반을
밑돌고 있다"

이들 컨설팅회사의 본질이 "강한 미국"을 상품화해서 사업기회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이들의 처방전대로 따라가면 진정 한국은 일본을 앞설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게 될 것인지, 나아가 IMF의 주문대로 한국의 재벌구조 금융산업
노동시장을 개편하면 우리의 미래는 보장될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먼저 1994년 그가 제기한 아시아성장한계론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80년대 들어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이 두드러진 반면 미국의 경제력이
실추되고 있다는 반성에서 동아시아로부터 정부의 시장개입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내에서 큰 관심을 끌었는데 크루그만은 시장주의자의
관점에서 이를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1997년 동아시아에 외환금융위기가 속발하자 당초 의도와는 상관
없이 그의 예측이 들어맞은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특히 IMF는 그의 주장을
포괄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서 채용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생산성 신드롬의 방법론적인 오류를 이해해야 한다.

크루그만이 인용한 앨빈 영의 실증분석에서는 요소투입량만을 설명변수로
포착했을 뿐,정작 핵심인 생산성에 의한 경제성장효과는 단지 잔여변수
(residual)로 간주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틀내에서 요소투입량의 극대화를 기할 수 있었던 아시아적
특성, 양적인 경험과 학습의 축적에 의해 가능한 질적인 변환, 노동과
자본의 상호작용에 의한 기술의 축적과 진보 등 생산성의 결정요소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는 방법론을 채용한 것이다.

셋째, 생산성 신드롬이 우리의 자유로운 전략선택을 제한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대표기업들은 일본의 성공모델을 진수받아 세계시장에서
강력한 지위를 구축하는 전략을 추구하여 왔다.

자신이 보유한 자원과 역량 만큼 성장해야 한다는 서구적인 합리성을
부정하면서, 꿈과 야망 속에서 있는대로 자원을 동원하고 역량을 키워내는
공격적인 전략모델을 채용해 왔다.

그 결과 재벌지배구조의 고착이라는 두통거리가 파생되기는 했지만, 덩치로
경쟁햐야만 하는 글로벌 산업분야에서 보여준 한국의 약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그러면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가.

외국자본이든 국내자본이든 국내에서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면 모두 환영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의 대표기업들이 서구자본의 생산하청기업으로
전략하는 역사적인 과오를 범해서는 안된다.

막대한 부가가치의 원천은 노동이 집약적으로 투입되는 생산공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지위와 브랜드 파워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일인 혹은 일족지배의 기업경영체제는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

그러나 3,4개의 핵심업종이 이루어내는 복합경영의 시너지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건설에서 일궈낸 브랜드 파워가 자동차를 밀어주고, 반도체의 명성이 첨단
산업에서 궤도진입을 단축시키는 상호보조시스템의 이익은 서구식 생산성
향상과는 비견할 수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경쟁력의 요체이다.

이찬근 < 인천대 교수 ckl1022@lion.inchon.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