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고건 당선] '서울시장 어떤 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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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국민 4명중 1명이 사는 최대 광역자치단체.
지난해말 현재 인구수는 1천38만9천5백7명.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담당하는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도시다.
올해 예산은 9조8천96억원.
지난 88년 12월부터 90년 12월까지 2년여간 서울시장을 역임한뒤 8년만에
다시 지휘봉을 잡게된 고건시장은 3천7백79건의 각종 사안에 대한 행정적
책임을 진다.
이중 1백24건만 시장이 결재하지만 나머지 실.국장 전결사안도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시장이 결정해야할 사안이 매일 평균 5~10건에 이른다.
휘하 공무원만 5만4천7백91명.
이에따라 서울시장을 대통령과 비교, "국방 외교권만 없는 소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역대 서울시장은 그위상에 걸맞게 숱한 화제를 뿌려왔다.
초대 서울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을 지낸 김형민시장.
46년 9월부터 48년 12월까지 2년2개월동안 재임했다.
2대 윤보선 시장의 취임일성은 "쓰레기를 청소하라".
해방 직후 어수선했던 서울의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8대 허정 시장은 시장문을 발로 차고 드나들기 예사였던 모 야당의원을
"깡패같은 놈"이라 호통치며 수위를 시켜 문밖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자유당 정권 몰락이후 첫 민선시장(11대)이 된 김상돈 시장은 카이저 수염을
기른채 취임사에서 "서울시는 복마전이다"라고 공언했다.
5.16 쿠데타후 취임한 12대 윤태일 시장은 현역 육군소장으로 군복을 입고
직무를 수행, "군복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4대 김현옥 시장의 별명은 "불도저".
김시장은 시장발령 직후 시청으로 가는도중 "광화문에 지하도를 뚫어라"고
지시한뒤 서울시 모습을 완전히 뒤바꾼 건설시장이었다.
16대 구자춘 시장의 별명은 "황야의 무법자".
26대 서울시장 김상철 변호사는 그린벨트안에 자택을 지은 죄로 취임
7일만에 옷을 벗었다.
4.19 혁명이후 35년만에 부활된 지방선거로 당선된 조순 시장은 중앙정부와
강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결국 대선출마를 위해 임기중 시장직을 사퇴,서울시 사상 초유의 강덕기
시장직무대리 체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 김동민 기자 gmkd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5일자 ).
지난해말 현재 인구수는 1천38만9천5백7명.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담당하는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도시다.
올해 예산은 9조8천96억원.
지난 88년 12월부터 90년 12월까지 2년여간 서울시장을 역임한뒤 8년만에
다시 지휘봉을 잡게된 고건시장은 3천7백79건의 각종 사안에 대한 행정적
책임을 진다.
이중 1백24건만 시장이 결재하지만 나머지 실.국장 전결사안도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시장이 결정해야할 사안이 매일 평균 5~10건에 이른다.
휘하 공무원만 5만4천7백91명.
이에따라 서울시장을 대통령과 비교, "국방 외교권만 없는 소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역대 서울시장은 그위상에 걸맞게 숱한 화제를 뿌려왔다.
초대 서울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을 지낸 김형민시장.
46년 9월부터 48년 12월까지 2년2개월동안 재임했다.
2대 윤보선 시장의 취임일성은 "쓰레기를 청소하라".
해방 직후 어수선했던 서울의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8대 허정 시장은 시장문을 발로 차고 드나들기 예사였던 모 야당의원을
"깡패같은 놈"이라 호통치며 수위를 시켜 문밖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자유당 정권 몰락이후 첫 민선시장(11대)이 된 김상돈 시장은 카이저 수염을
기른채 취임사에서 "서울시는 복마전이다"라고 공언했다.
5.16 쿠데타후 취임한 12대 윤태일 시장은 현역 육군소장으로 군복을 입고
직무를 수행, "군복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4대 김현옥 시장의 별명은 "불도저".
김시장은 시장발령 직후 시청으로 가는도중 "광화문에 지하도를 뚫어라"고
지시한뒤 서울시 모습을 완전히 뒤바꾼 건설시장이었다.
16대 구자춘 시장의 별명은 "황야의 무법자".
26대 서울시장 김상철 변호사는 그린벨트안에 자택을 지은 죄로 취임
7일만에 옷을 벗었다.
4.19 혁명이후 35년만에 부활된 지방선거로 당선된 조순 시장은 중앙정부와
강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결국 대선출마를 위해 임기중 시장직을 사퇴,서울시 사상 초유의 강덕기
시장직무대리 체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 김동민 기자 gmkd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