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통일된 어문정책이 있는지 말하기가 쉽지 않다.

헌법을 포함 각종 법률은 한글.한자 혼용이고 호적법도 한자 또는 한글로
이름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어문정책을 담당하는 문화관광부와 교육부 입장은 한글전용이다.

신문의 경우 한글을 주로하되 적은 수나마 한자를 혼용 또는 병기하는 등
신문사마다 입장이 다르다.

학계나 일반인 역시 한글 전용파와 한글.한자혼용파로 양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말 어문정책이 이원화됨으로써 한글전용교육을 받은 국민이
받는 피해는 크다.

무엇보다 한자를 알지 못함으로 인해 본인의 뜻이나 재능과는 무관하게
어리석고 무지한 국민이 될 수 있다.

교육을 받았음에도 신문을 해독 못하고, 법을 몰라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자를 모르면 본인 뜻과는 관계없이 과거와 단절된 한글세대가 돼
조상들이 수천년간 응축해 온 지혜의 산물인 전통문화와 철학에 접근 못하는
불이익도 감내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전통적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잃게 돼 국민의 심리적 중심이
허약해진다.

유입되는 외부문화에 대한 비판능력과 정화능력이 발휘되기 어렵다.

뿐만아니라 17억이나 되는 한자문화권의 일원으로서 응당 받아야 할 이익도
잃게 된다.

이러한 많은 폐단에도 불구 한글전용 교육정책때문에 이를 모두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세종대왕은 한자를 배척하자는 뜻이 아니라 백성들이 한자를 몰라 당하는
억울함을 면하게 하자는 의미에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다.

그 분이야말로 한글 용법의 다의성을 몸소 펴 보이셨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한글전용이 곧 애국"이라는 한글전용일파의 영향으로
이 나라 어문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글전용 교육정책이 한자문맹을 양산, 다시금 세종께서
우려하셨던 어리석은 국민으로 돌아가고 있다.

통탄할 일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국민은 시시각각 거센 도전을 이겨 나가야
할 이때 우리만 우물안 개구리로 남아 "한글전용이 곧 애국"이라는 우민화
길을 따라 가서야 되겠는가.

필자 눈엔 한글전용이 애국이 아니라,오히려 망국을 자초하는 문자정책이며
세종대왕의 영명한 뜻에 대한 배반이며 모독으로 보인다.

박천서 < 한국어문회 상임이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