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8박9일 일정으로 미국을 공식방문하기 위해 오늘
출국한다.

김대통령의 지난 4월 런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이 대통령
취임후 다변외교의 첫 무대였다면 이번 방미는 한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
안보 파트너를 상대로한 쌍무외교의 첫 무대라는 점에서 우리의 기대는 그
어느때보다 크고 절실하다.

우리는 김대통령이 50년만에 여야정권교체를 이룩한 한 탁월한 정치지도자
라는 화려한 이미지보다는 파탄난 한국경제의 부활의지를 보여주고 미국의
대한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무거운 부담을 안고 첫 방미정상외교길에
오르게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김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새로운 지도자가 이끄는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미국사회에 각인시킴으로써 21세기 동반자관계를 공고히 하고 한반도문제에
대한 양국의 공조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외교 안보적
의미를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적 현실과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행사하고 있는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우리의 관심사는 경제협력
문제에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

김대통령의 공식 비공식 방미일정이 대부분 경제외교 세일즈외교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재계대표단을 전문경영인 위주로 구성한 점 등은 정상외교에
임하는 김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외국국가원수로서는 이례적으로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증권거래소와
첨단기술의 요람인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73회의 연설을 포함, 80여회의 각종 만남과 행사로 빡빡하게 짜여진 방미
스케줄은 대통령의 의욕과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빡빡한 일정이 자칫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초점을 흐려놓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메시지가 많을수록 우선순위에 입각, 몇가지 핵심만을 추려내 집중 공략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중에서도 최근 미국 언론들이 회의를 표시하고 있는 우리의 경제개혁
의지와 투자여건개선 노력의 실상을 집중적으로 알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김대통령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듯이 지방선거후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개혁에 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가감없이 미국조야에 인상깊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방미외교의 또다른 목적인 "한차원 높은 한.미 동반자관계 구축"
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의 안보적 우방관계를 앞으로는 경제적
우방관계로 끌어올리는 일에 다름아니다.

한.미 양국은 이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있어 21세기 경제적 동반자로서의 위상확립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도 아닐 것이다.

이번 김대통령의 세일즈정상외교와 전문경영인들의 현장 비즈니스가 함께
어우러져 "방미후의 대대적 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알찬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