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외환위기 수사결과 발표] '환란수사 종합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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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5일 외환위기 대처과정과 문제점에 대해 1백45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한국은행, 재정경제원, 청와대, 시중은행 관계자 등 총 1백36명을
1백77회에 걸쳐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이 사초를 남긴다는 심정으로 기록했다는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다.
<>경보음 무시 =97년초부터 한국은행과 경제연구소는 잇따라 외환위기
가능성을 보고했다.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의 외화유동성 사정은 지방종금사의 경우 지급불능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97년 3월부터 11월까지
9회에 걸쳐 재정경제원에 올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17회에 걸쳐 똑같이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재경원은 "우리나라의 경제기초여건이 건실한 만큼 자본시장의
제한적 개방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며 경고를 무시했다.
<>환율방어를 위한 외환소진 =당시 금융기관들은 대기업 연쇄도산에 따른
부실채권누적과 주가하락으로 인한 유가증권손실로 위기상황을 맞고있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단기 고금리의 외화자금을 차입해 동남아등지의 고위험,
고수익 채권에 과도하게 투자해온 국내금융기관들은 동남아 화폐가치폭락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국내금융기관의 외화차입은 점차 어려워졌으며 차입금리도 인상됐다.
만기연장도 어려워졌다.
97년 10월 홍콩증시 폭락과 국가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면서 한국은행의
지원없이는 대외자금결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한국은행은 97년 11월부터 두달동안 2백33억달러를 환율방어에 소진했다.
외환보유고는 바닥상태에 이르렀다.
<>기아사태 처리 지연 =97년 7월 부도유예협약 적용으로 사실상 부도를
맞은 기아자동차의 처리가 3개월이상 지연되면서 대외신인도는 급락했다.
협력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은 더욱 심화됐다.
재경원은 그러나 채권단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처리한다고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채권은행단에 대해 일일히 처리방침을 지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같은 해 10월 "대출금 출자전환을 통한 공기업화"라는 반시장주의
방법으로 기아자동차 처리방침이 결정났다.
직후 외국신용평가기관들은 일제히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재경원의 무사안일과 축소보고 =97년 10월28일 열린 관계기관 대책
회의에서 한국은행은 외환위기의 급진전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강경식 전부총리는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축소보고하면서 IMF지원요청이 지연되는등 수습기회를 놓쳤다.
같은해 11월3일 외국인주식 투자한도 확대조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은 가속화됐다.
이미 자력으로 외환위기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11월9일 열린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도 IMF로 가는 것외에 대안이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강전부총리는 10일 대통령보고에서 "경제기초여건이 좋아 위기는
없을 것"이라며 축소보고했다.
<>지지부진했던 IMF지원요청 =지난해 11월16일 뒤늦게 열린 IMF협상에서도
필요한 자금규모나 지원시기에 대한 방침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금지원대신 한국정부가 추진중인 금융개혁법안과 종합대책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데만 시간을 낭비했다.
더욱이 강전부총리는 IMF자금지원요청방침이 확정됐음에도 이를 후임
부총리에게 인수인계하지 않았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6일자 ).
발표했다.
보고서는 한국은행, 재정경제원, 청와대, 시중은행 관계자 등 총 1백36명을
1백77회에 걸쳐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이 사초를 남긴다는 심정으로 기록했다는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다.
<>경보음 무시 =97년초부터 한국은행과 경제연구소는 잇따라 외환위기
가능성을 보고했다.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의 외화유동성 사정은 지방종금사의 경우 지급불능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97년 3월부터 11월까지
9회에 걸쳐 재정경제원에 올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17회에 걸쳐 똑같이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재경원은 "우리나라의 경제기초여건이 건실한 만큼 자본시장의
제한적 개방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며 경고를 무시했다.
<>환율방어를 위한 외환소진 =당시 금융기관들은 대기업 연쇄도산에 따른
부실채권누적과 주가하락으로 인한 유가증권손실로 위기상황을 맞고있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단기 고금리의 외화자금을 차입해 동남아등지의 고위험,
고수익 채권에 과도하게 투자해온 국내금융기관들은 동남아 화폐가치폭락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국내금융기관의 외화차입은 점차 어려워졌으며 차입금리도 인상됐다.
만기연장도 어려워졌다.
97년 10월 홍콩증시 폭락과 국가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면서 한국은행의
지원없이는 대외자금결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한국은행은 97년 11월부터 두달동안 2백33억달러를 환율방어에 소진했다.
외환보유고는 바닥상태에 이르렀다.
<>기아사태 처리 지연 =97년 7월 부도유예협약 적용으로 사실상 부도를
맞은 기아자동차의 처리가 3개월이상 지연되면서 대외신인도는 급락했다.
협력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은 더욱 심화됐다.
재경원은 그러나 채권단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처리한다고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채권은행단에 대해 일일히 처리방침을 지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같은 해 10월 "대출금 출자전환을 통한 공기업화"라는 반시장주의
방법으로 기아자동차 처리방침이 결정났다.
직후 외국신용평가기관들은 일제히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재경원의 무사안일과 축소보고 =97년 10월28일 열린 관계기관 대책
회의에서 한국은행은 외환위기의 급진전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강경식 전부총리는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축소보고하면서 IMF지원요청이 지연되는등 수습기회를 놓쳤다.
같은해 11월3일 외국인주식 투자한도 확대조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은 가속화됐다.
이미 자력으로 외환위기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11월9일 열린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도 IMF로 가는 것외에 대안이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강전부총리는 10일 대통령보고에서 "경제기초여건이 좋아 위기는
없을 것"이라며 축소보고했다.
<>지지부진했던 IMF지원요청 =지난해 11월16일 뒤늦게 열린 IMF협상에서도
필요한 자금규모나 지원시기에 대한 방침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금지원대신 한국정부가 추진중인 금융개혁법안과 종합대책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데만 시간을 낭비했다.
더욱이 강전부총리는 IMF자금지원요청방침이 확정됐음에도 이를 후임
부총리에게 인수인계하지 않았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