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계기준이 전면적으로 바뀐다.

국내기업의 회계정보를 불신하는 외국투자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는
오늘 10월까지 회계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칠 예정이다.

외국인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모든 회계기준을 국제회계기준에 맞추라는 것이다.

기업의 회계정보는 기업의 건강상태를 가늠하는 잣대다.

병이 났을때는 치료방법도 암시해준다.

하지만 잣대에 문제가 있다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외국인들은 국내기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하려해도 마땅한 판단기준이 없다고
지적한다.

회계잣대부터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따라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회계정보의 신뢰성이 회복되도록
기업회계기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더불어 기업회계기준의 중심축도 바뀐다.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이나 금융기관 보호차원에서 벗어나 투자자를 위한
기준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발상의 전환을 통해 회계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회계제도 개선방향은 각종 예외조항과 임의선택규정 등을
철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투자자 등 정보이용자의 입장보다는 사실상 금융기관과 기업의 편의만을
고려해준 회계조항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회계수준이 국제회계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회계정보를 불신하는 것도 특수한 회계처리를 인정하고
있어서다"(송인만 성균관대 교수)

특수한 회계처리의 예는 바로 <>임의적인 자산재평가 <>외화환산손실
<>연구개발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증권감독원은 개선방안을 강구중이다.

자산재평가는 아예 폐지하든지 수년마다 일시에 실시토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있다.

기업의 외화자산이나 외화부채에서 발생하는 환산손익은 원칙적으로
당기에 모두 반영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있다.

이럴 경우 대차대조표상에 환차손익을 위한 이연자산과 이연부채 항목이
없어지고 기업의 재무상황은 환율에 한층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연구개발비를 당기에 비용처리하느냐는 문제도 기업엔 적잖은 부담이다.

국제회계기준에서는 당기비용처리가 원칙이다.

하지만 증권감독원은 연구개발 의욕이 꺾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 수익실현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현행처럼 이연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또 기업의 자의적인 회계변경에도 칼질이 가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임의규정을 최대한 활용해 쉽게 이익을 조작해왔기
때문이다.

기업의 여건에 맞게 회계기준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 준
것이 오히려 분식회계의 화근이 됐다.

예컨대 고정자산의 내용연수 규정이나 퇴직급여충당금 설정, 대손충당금
설정, 공정설비에 대한 특별상각 등에서 기업들은 마음대로 이익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소위 "고무줄 회계"가 대부분 이런 항목들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회계기준을 갑자기 대폭 바꾸는 것 역시 문제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무턱대고 선진국의 회계기준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우리현실에 맞지않는 외국의 회계제도를 그대로 수용했을때 오히려 기업
재무정보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환차손익이나 연구개발비를 당기손실이나 비용으로 처리할 경우 평상시의
기업실적이 오히려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부장)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 등의 반발에도 불구,IMF체제의 특수성으로 인해 회계기준이
대폭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고있다.

회계기준의 국제화는 기업들에는 당장 발등의 불이 됐다.

< 박영태 기자 p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