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없는 혁명"

공기업 사람들은 요즘 상황을 이렇게 부른다.

"메가톤급 지각변동이다. 동전이 어떻게 던져지느냐에 따라 살생여부가
판가름난다"(A공기업 P본부장)

동전의 한 쪽은 민영화이고 다른 면은 자체경영혁신이다.

한국전력등 1백8개 공기업은 이미 운명의 심판대에 올라 있다.

기획예산위원회가 6월말 선고문을 낭독한다.

30만 공기업 가족들은 공기업 매각과 자체경영혁신이라는 두 갈래길에서
서로 이별할수 밖에 없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을 포함해 각종 공공재를 생산해온 공기업.

이들 기업이 없다면 당장 국가경제는 올스톱이다.

전기 전화 가스 등은 국민생활의 필수품이다.

이렇듯 공기업은 산업의 공익성과 민간부문의 영세성 등을 이유로 세워졌다.

지난 60,70년대엔 한강기적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한국경제발전의 "훈구대신"격인 공기업은 이제 공신목록에서 빠질
신세다.

이른바 역할폐기론이다.

공룡처럼 몸집만 커졌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을 제외한 1백8개 공기업의 살림규모는 98년기준 1백조원.

중앙정부예산(68조9천억원)의 1.5배다.

IMF이후 나라살림에 빨간불이 켜졌다.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은 최근 공기업을 팔아 1백억달러(14조원)를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돈은 실업기금및 부실금융정리기금으로 쓰여진다.

공기업민영화가 새정부들어 새로나온 캐치프레이즈는 아니다.

김영삼정부도 공기업개혁을 외치기는 했다.

소리만 요란했을뿐 성과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IMF 위기로 공기업민영화를 늦출수 없는 상황이 된것이다.

공기업 개혁은 새 정부의 개혁시범작업이다.

"정부도 이만큼 했는데 민간기업도 따라와야지"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유치에 효자노릇도 한다.

정부로선 IMF빈곤을 탈출할 빅카드다.

그렇다고 알짜배기 공기업을 송두리째 외국에 파는건 문제라는 일부 시각도
있다.

신매판자본론의 등장이다.

기획예산위원회는 공기업 경영혁신을 위한 네가지 기본원칙을 정했다.

(1)경제사회 여건변화로 존재의 필요성이 적어진 분야는 폐지하거나 축소
한다 (2)민간부문이 경영하는게 더 효율적이면 민영화한다 (3)공공성.기업성
이 함께 요구되는 분야는 내부 구조조정과 민간위탁 등을 추진한다 (4)
공공성이 중시되는 분야는 내부혁신및 경영효율화를 꾀한다.

그렇다면 어느 공기업이 위의 네가지 원칙에 해당되는 공기업으로 분류될까.

지난달 기획위가 각 부처로부터 26개 공기업(모기업 기준)의 분류표를
받았다.

한국담배인삼공사 한국중공업 한국통신 포항제철 등 4개 회사만 기업성이
강한 공기업, 즉 민영화리스트에 자진해서 올렸을 뿐이다.

나머지 공기업들은 "우리는 안돼"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기획위는 오늘 공기업 경영혁신 공청회를 열고 6월말 최종안을 확정,
발표한다.

이래저래 6월은 공기업 민영화가 뜨거운 감자로 언론을 장식할 것이다.

< 정구학 기자 cg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