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네트워킹 장비에 대한 관세부과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연합(EU)간에 무역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만해도 미국측을 지지하던 세계무역기구(WTO)가 최근 이를 다시
뒤집는 판정을 내려 문제는 더욱 꼬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WTO 판정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하고 있지만 미국내
컴퓨터업계와 WTO 반대론자들의 성토에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컴퓨터장비에 대한 관세를 삭감하기로 했던 EU가 당초 약속을
교묘히 번복하고 나선 데서 비롯됐다.

EU는 지난 94년 컴퓨터장비에 대해 관세를 삭감하기로 미국과 협정을
맺었었다.

그러나 이 협정을 그대로 준수할 경우 미칠 파급효과를 우려,
컴퓨터장비를 통신장비로 재분류한 다음 오히려 관세를 2배가량 더 올려
놓은 것이다.

미국은 즉각 불공정 교역행위라며 WTO에 제소하는등 맞대응 작전을 폈다.

미국의 제소에 따라 지난 2월에 열린 WTO 청문위원회는 EU의 행위가
엄연히 국제교역 원칙을 어긴 것이라며 미국의 주장을 옹호했다.

그러나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WTO 항소위원회는 미국측 주장이 근거없다며
1심판결을 기각해버린 것이다.

이번 사안은 미국이 WTO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무역분쟁중 분쟁규모가
가장 큰 사안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있다.

유럽 컴퓨터 네트워크장비 시장규모가 연간 50억 달러에 달하는데다 이중
50%를 미국기업이 점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 정부는 WTO의 이번 판결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EU와 미국이 오는 2000년부터 분쟁 품목의 관세를 모두 철폐하기로
정보기술협약(ITA)을 이미 맺었기 때문에 이번 판정이 몰고올 파장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

그러나 미국 업계는 2000년까지 마냥 기다리다가는 관세장벽의 보호를
받는 유럽기업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해버릴 것이라며 미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난하고있다.

업계는 지난 4월에도 "코닥이 일본시장에서 부당하게 배척받아 왔다"는
미국측 주장이 WTO에서 배척됐던 적이 있었다며 미 정부가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고 보고 있다.

< 장규호 기자 ghch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