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이 빅딜을 언급한 이후 또 다시 "빅딜 리스트"가
나돌아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번 루머는 특히 광범한 업종의 구체적인 산업구조재편 방향까지 담고
있어 해당 업체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모그룹 관계자는 "상층부끼리의 교감으로 성사되는 빅딜을 불쑥 발표하면
상관없는 기업들까지 고생하게 된다"며 불만을 토했다.

이번에 돌고있는 "빅딜리스트"는 자동차 가전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항공
등 업종에서 논의되고 있는 광범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

심하게 얘기하면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나열한 형태다.

그만큼 신빙성은 떨어진다.

문제는 그러나 누구도 자신있게 "아니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올초 빅딜이 처음 논의됐을 때 루머에 오른 업체들은
어음회수가 집중되고 대외거래가 끊기는 바람에 부도직전에 몰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빅딜논의는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그룹 관계자는 "한 건이 성사되는 것을 갖고 발표하는 것 자체가 문제"
라며 살생부 파문에 이어 빅딜파문이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김중권 실장이 말하는 빅딜은 의외로 숫자도
적고 규모도 작을 가능성이 높다"며 "빅딜이 가져올 파문을 고려할 때
추진되고 있는 빅딜이 있다면 어떻게든 빨리 공식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재계가 긴장하는 것은 루머에 따른 악영향 뿐만 아니다.

이번 빅딜 발표가 대기업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더
많다고 봐야 한다.

정부가 "무르익은" 빅딜을 굳이 김대중대통령이 귀국한 이후에 발표키로
한 것을 이를 계기로 기업구조조정에 불을 댕기겠다는 의지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연이어 정리대상 부실기업 명단을 17일께 발표하면서 대기업 구조조정의
성과를 높여간다는 일정이라는 얘기다.

이 경우 빅딜을 하지 않은 기업에 대한 압박이 있을 것이 분명하고 이
과정에서 지난달 살생부 파문 못지 않은 빅딜 파문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게 재계의 우려다.

이미 기업들은 김 대통령이 부실판정 결과를 못마땅하게 평가한 이후 정부
당국이 실적 중심으로 "한 그룹 몇개씩" 식으로 부실기업을 선정하려고 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모그룹 관계자는 "작년말부터 논의됐던 빅딜논의가 수그러든 것은 빅딜이
결국 시장경제논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며 "다시 빅딜은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오류"라고 지적했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