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1번지 명동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한낮에도 셔터가 내려진 점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임시할인매장도 수두룩하다.

거리엔 땡처리업자들의 호객소리만 요란하다.

"돈 없으면 아이쇼핑이나 하라"며 배짱으로 장사했던 명동상인들.

이제는 "사지 않아도 좋으니 일단 들어오라"고 호소한다.

10일 오후 5시 명동 패션마트 앞.

거리는 온통 젊은이들로 뒤덮였다.

걷기도 힘들 정도다.

확성기에선 쉴틈없이 헤비메탈 음악이 쏟아져나온다.

도우미들의 손님 부르는 소리도 떠들썩하다.

길바닥엔 할인판매를 알리는 쪽지가 널려 있다.

한마디로 무엇을 내놓든 불티나게 팔릴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않다.

명동상인들은 몰려드는 인파를 보고도 한숨만 내쉰다.

패션마트만 봐도 그렇다.

이곳은 원래 고급옷을 파는 막스&스펜서였다.

그러나 이달중 제3차 경매에 부쳐진다.

주인이 망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개장한 패션마트는 다음달 5일 문닫는 임시할인매장에 불과하다.

중국대사관과 중앙로 사이 골목에도 빈 점포가 줄서 있다.

이지클럽(에벤에셀)을 비롯 베네똥 현각빌딩 랜드룩 제시카 거얼&거얼
엘리에셀 등이 대표적이다.

명동 한복판 유투존 앞에도 두 점포가 비어 있다.

명동성당으로 오르는 길목엔 커피숍 세곳이 문을 닫았다.

한 폐업점포 문에는 "내부수리중" "3월27일 오픈 예정"이라고 씌어 있다.

약속시점이 두달 남짓 지난 셈이다.

하지만 수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땡처리업자들의 할인행사 전단만 유리창에 겹겹이 붙어 있다.

문을 열었다고 성한 점포가 아니다.

임시할인매장이 상당수다.

금강제화 뒷골목 옴파로스 자리에선 "란제리 창고정리"세일이 한창이다.

중앙로 록포트 자리에서 는"폐업총정리"가 열리고 있다.

유투존 뒷골목 닉스 자리, 중국대사관 뒤편 이랜드매장, 중앙로 이브로쉐
자리, 명동역 인근 스카이라인 1층도 임시할인매장으로 바뀌었다.

명동상권의 "고급.고가"이미지도 확 달라졌다.

지금 이곳에선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헐값에 팔리고 있다.

중국대사관 뒷골목의 한 할인매장은 고급 브래지어 3개, 팬티 5장, LA기어
양말 7켤레를 각각 1만원에 판다.

점포주인은 이를 "IMF시대에 맞는 가격"이라고 말한다.

"화장품을 10년전 값으로 드립니다"라고 써붙인 임시할인매장도 있다.

"전국 최고기술"을 뽐내던 미용실도, 국제미용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미용실도 길거리에서 할인티켓을 뿌린다.

명동파출소앞 커피숍 산타마리아는 정오까지 "커피 1천5백원"이란
플래카드를 내걸어 놓는다.

심지어 귀금속가게들도 정기세일이란 명목으로 10~30% 깎아주고 있다.

유명 메이커들도 이젠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다.

유투존은 4층을 유명의류할인매장으로 변경, 최근 지사이드란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에스에스 하티스트 코오롱모드 LG패션 등도 30% 안팎의 세일을 하고 있다.

<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