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저녁 김포 우전공업화학의 공장마당에선 갈비파티가 벌어졌다.

지금까지 이 회사는 대량수주를 따내는등 기쁜일이 생길 때면 공장
앞마당에서 숯불을 피워놓고 갈비파티를 벌여왔다.

정태우사장(50)은 그때마다 20명 남짓한 사원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왁자지껄하게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숯불위에 갈비를 얹으면서도 누구하나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없었다.

영업부의 김칠서과장이 오늘은 갈비의 질이 좋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이날부터 우전공업화학이 "휴업"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어서다.

폴리에틸렌(PE)필름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일본으로부터 포장재주문이
밀려올때까지만 해도 플라스틱업계에선 잘나가는 회사로 꼽혔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한파를 겪으면서 수출채산성이 떨어진데다
쇼핑백및 잡화류포장재 물량이 급감되면서 매월 1억1천만원의 적자를
낼 수 밖에 없었다.

IMF이전보다 원료인 PE레진의 가격은 30%나 오른데다 주문량이 70%나
급감하면서 적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결국 정사장은 "더 이상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손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사원들과 협의를 한뒤 일단 6개월간 "휴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휴업에 들어가기가 아쉬워 갈비파티라도 벌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파티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5년째 회계를 맡고 있는 여사원 이수명씨가 갑자기 소리를 죽여가며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휴업기간동안에도 기본급의 50%는 통장으로 넣어주겠다고
거듭 다짐하던 정사장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풀죽은 사원들은 말없이 식사를 대충 끝낸 뒤 뿔뿔이 흩어졌다.

모두가 과연 반년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지에 의문을 품은 듯했다.

이날 "왜 휴업을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는 적자를 더이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휴업을 하면
인정과세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셋째 폐업을 하면 공장등록증이 말소돼 자산손실을 입게 되기 때문에
일단 휴업을 택했단다.

넷째론 장기어음을 받지 않아도 돼 연쇄부도는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처럼 휴업을 선호하는 중소기업이 느는 추세다.

방수제를 생산하는 은성케미칼, 고무 호스를 만드는 세명산업고무등도
이와 비슷한 상황으로 휴업에 들어갔다.

공장을 가지고 있는 협동조합 가입업체를 대상으로 전국의 휴업체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해봤다.

지난해 11월 국내 휴업공장은 3백42개사였다.

이 숫자는 IMF가 시작된 12월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해 지난 1월엔
4백25개사, 2월 3백94개사, 3월 4백76개사, 4월엔 5백14개사, 5월엔
5백50백개사로 크게 늘어났다.

이들은 한결같이 불황에 못이겨 스스로 세무서를 찾아가 휴업신고를
한 회사들.

이달들어선 이런 휴업공장이 6백개에 이를 전망이다.

정부는 각종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신규투자및 벤처분야에만 자꾸 쏟아부을
게 아니라 휴업공장이 재가동할 수 있게 하는데도 배정해줘야 할때다.

< 이치구 중소기업 전문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