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이 추락하고 있다.

당사자인 일본은 묘안을 내지 못하고 있고 미국은 엔화하락을 방치하겠다는
태도다.

즉각 세계 곳곳의 주가와 통화가 곤두박질쳤고 중국 위안화도 멀지 않았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발 세계공황설이 고개를 드는 것도 그래서다.

엔화는 런던과 뉴욕시장에서 달러당 1백44.40엔까지 폭락한데 이어 12일
도쿄시장에서 오전 한때 1백44.75엔까지 추락했다.

하루만에 3엔이나 떨어지면서 지난 90년8월30일 이후 최저시세를 기록했다.

오후들어서 1백44엔대로 회복되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1백50엔대 붕괴도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엔화폭락은 즉각 세계시장에 충격파를 던져 파운드 마르크 캐나다달러 호주
달러 등 주요국 통화들을 일제히 약세로 밀어넣었다.

또 뉴욕증시 주가가 올들어 두번째로 큰 낙폭(1.8%)을 기록한 것을 비롯
캐나다 영국 독일증시가 일제히 약세로 밀려났다.

말레이시아 태국 대만 등 아시아의 주가와 통화도 하락세를 지속했다.

일부 오름세를 보인 곳도 있지만 지난 이틀간 큰 폭으로 빠진데 대한
반등이어서 엔화가 추가하락하면 급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엔화가 이처럼 급작스레 빠진 것은 로버트 루빈 미국재무장관 등의 발언
때문이다.

"엔화약세는 시장개입으로서는 호전시킬 수 없다"고 말해 엔방어를 포기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미국정부 당국자들의 이같은 발언이 전해지자 오미 코지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은 "엔 약세가 세계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우리로서는 알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과 일본의 감정섞인 갈등이 "약세"를 "폭락"으로 몰고 간 셈이다.

미국이 등을 돌리고 일본 자체적인 해결책이 없는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면
엔화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가 이미 위안화 방어를 위한 시장개입에 들어선 대목은 "위안화도
영향권"에 근접하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제2환란이 시나리오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의 무책임한 "불장난"이 세계경제에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국제시장이 요구하는 개혁을 머뭇거리지 말아야 하고 미국은 감정적
인 대응을 그만두어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 정규재 기자 jk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