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가 되자 ]

의사실업자.

멀쩡히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혹시 나도 언제..."라는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직장이 더이상 자신과 가족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음을 알고 있다.

회사가 나를 버리는 "배반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지만 직장에 다니는게 아닌"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른바 "재직부재직"현상이다.

이런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출퇴근길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집→학원→직장→학원→집이다.

학원수강은 외국어나 컴퓨터가 주종이다.

실력은 감가상각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IMF시대 생존비법은 특정업무에 프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격증이나 MBA학위에 도전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미국의 CPA(공인회계사)에 응시하겠다고 늦은 나이에 학원에 등록하는
사람도 있다.

각종 유망자격증학원은 미어터지고 있다.

최근 미국CPA응시과정을 개설한 한국미래경영연구소에는 하루 5백여건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황석하 소장은 "자격증을 취득하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가장 많이 물어
왔고 직장인들이 대다수"라고 밝혔다.

프로를 꿈꾸는 이들에게 현재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다른 일을 포기하는데 따른 기회임금일뿐이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있는 것이다.

아마추어의 시대가 끝났다.

믿을 것은 자기실력뿐이다.

애사심이 아니라 프로정신이 필요하다.

회사도 가신보다 전문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프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프로는 미치광이다.

자기일에 편집광적인 열정을 보인다.

지난달 LPGA에서 우승한 박세리는 골프편집광이다.

그녀는 프로골퍼인데도 하루에 퍼팅만 1천개이상을 연습한다.

자신의 몸값을 받는 프로선수에게서 생존법을 배워야 한다.

프로라고 반드시 고상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건 아니다.

자장면배달부도 프로가 돼야 먹고살 수 있다.

철가방 번개로 유명한 조태훈(29)씨.

그는 자장면배달분야에서 국내최고의 프로를 꿈꾸고 있다.

"자장면맛은 주방장이 내지만 그 맛을 유지하는건 배달부다"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남들이 다 뜨내기인생으로 알던 자장면배달부를 5년째 하고 있는 그는
독특한 현장마케팅으로 이 분야 전문가가 됐다.

그는 자장면을 주문한 고객에게 짬뽕국물을 서비스로 내놔 고려대앞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군만두를 시킨 고객에게는 소주한병을 공짜로 내준다.

"군만두를 시키는 고객은 소주안주가 필요한 것이지 꼭 군만두를 먹고 싶어
주문한게 아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런 기발한 서비스가 가능했다.

손님에게 "자장면에 식초를 넣어먹으면 소화가 잘되고 고춧가루를 쳐서
먹으면 느끼한 맛이 사라진다" 비결도 알려주었다.

기업마다 앞다투어 내세우고 있는 고객만족을 이미 그는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기업들의 강연요청에 요즘은 강사로 더 바쁘지만 8월부터는 다시 본업으로
복귀해 철가방을 들려고 한다.

그는 자장면집 주인이 인생의 꿈이다.

프로다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도 조건이 있다.

한가지 일만 오래했다고 전문가가 되지 않는다.

"번개" 조태훈씨가 철가방을 오래들고 다녔다고 전문가로 대접을 받는건
아니다.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늘 생각했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기에 가능했다.

"한가지 일만 오래한 사람은 단순 스페셜리스트이고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는
자기가 하는 일에 부가가치를 더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리스트다"(인하대
박기찬 교수)라는 얘기다.

< 안상욱 기자 daniel@ >

[특별취재반]

<>김형철 사회1부장(반장)
<>강현철 <>안상욱 <>김광현 <>강은구 <>정태웅 <>김재창 <>이심기
<>양준영 <>송태형 <>김용준 <>류성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