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폭락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화 시세가 달러당 1백50엔을 넘어설 경우 위안화 절하와
아시아 위기의 재폭발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일본 정부가 조속한
내수확대및 구조조정 정책에 착수할 것을 권고했다.

뉴욕과 일본에 주재하고 있는 본보 특파원들이 각각 김응한 미시간대
금융연구소장과 다케우치 히로시 장은종합 연구소장을 만나 엔 추락과
아시아및 세계 경제 향방에 대해 긴급 인터뷰를 가졌다.

김 교수는 이 인터뷰에서 "엔화에 이어 위안화 절하도 초읽기에 들어간
만큼 한국은 결제통화를 다양화하고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등 제2위기에
신속히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케우치 소장 역시 "엔 약세와 이에 따른 위안화 절하는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만큼 일본의 부실 금융 정리와 미.일간 공조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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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한 < 미국 미시간대 금융연구소장 >

- 엔화 폭락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 일본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미국 등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세율 인하 등 근본적인
개혁조치를 외면해 왔다.

하시모토 정부가 작년에 이어 지난 4월에도 경기부양 조치를 내놓긴 했지만
그 정도의 조치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부작용만 초래하고 있다.

보다 확실하게 내수를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항구적인 경제체질 전환을
서둘지 않는한 엔화 약세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 엔화 폭락의 여파로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위기가 한층 심화되고
있는데.

<> 지금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중국 경제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에 나설 경우 그 충격파는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시아 역내에 엔화하락 이상의 변수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및 경제 위기가 또 다른 결정적인 고비를 맞게 될
수도 있다.

- 위안화도 절하될 것으로 보는가.

<>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공식석상에서 위안화 절하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으나 최근 태도를 바꾸고 있다.

얼마전에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엔화하락 때문에 중국의 수출사정이
안좋아지고 있다"고 시인한 적이 있다.

그의 발언은 위안화 절하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 엔화절하 행진이 지속될 경우 "도쿄발 세계공황"으로 비화.발전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작년 후반 아시아 국가들에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도 많은 전문가들은 그
불똥이 미국과 유럽으로까지 튈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서방 선진국들, 특히 미국은 오히려 수입물가 하락 등에 따른 반사 이익을
보고 있다.

미국주가가 작년 하반기 이후 큰 폭의 상승 행진을 계속한 것이 단적인
반증이다.

유럽 역시 단일 통화인 유러화 출범을 앞두고 경기상승에 탄력을 받고 있다.

- 미국 내에서는 무역적자 심화 등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

<> 미국경제 유일의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바로 무역수지다.

무역분야만 놓고 본다면 엔화 폭락에 따른 영향이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당분간 무역적자가 확대되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일부 제조업계의 수출부진이 미국의 경기과열 우려를
불식시키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미국 정부도 엔저 문제에 팔을 걷어 부치고 개입할 자세가 이닌 것 같다.

- 미국이 사실상 엔저를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

<> 역사적으로 인위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효과를 낸 적은 없다.

장기적인 시장흐름의 물꼬를 정부개입으로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설사 개입하더라도 외환 투기꾼들에게나 좋은 일을 시켜 줄 뿐이다.

가깝게는 작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과 태국의 경우가 좋은 예다.

- 일각에서는 일본을 길들이기 위한 미국측의 원격조정에 의해 엔화하락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 그런 얘기는 아시아 외환 위기가 미국의 "음모" 때문이었다는 주장
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일본경제가 나쁘고 시장의 흐름이 엔화를 약세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엔화하락을 멈출 수 있는 열쇠는 경제구조조정 등 일본 자신에게 주어져
있을 뿐이다.

- 한국에는 당장 엔저의 불똥이 크게 튀고 있다.

엔저로 인해 한국의 위기탈출이 최소한 1년 이상 더 걸리게 됐다고들 한다.

<> 해외에서 들여오는 통화를 다변화시키는 등 헤지를 서둘러야 한다.

또 아시아에 새로운 외환위기가 오기 전에 경제전반의 체질을 완전 자유
경쟁과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게끔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외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일반국민들의 경제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이번 외환위기는 국민들에게 냉엄한 국제경제 원리를 깨우치게 하는 등
인식전환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호재일 수도 있다.

- 김 교수는 지난 1월 한국 정부의 금융기관 단기외채 만기연장 협상에
고문으로 참여했었는데 한국이 지금까지 추진해온 개혁조치를 어떻게 보는가.

<> 아직까지는 실제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 왔다.

구조조정이 가장 필요한 곳은 정부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불요불급한 조직과 인원을 과감히 정리하고 규제 철폐에 나서야 한다.

이런 일을 하지않는 것 자체가 구조조정을 외면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정부가 기업들에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작 정부 자신의
구조조정이 더 급하다.

정부는 민간부문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게임 규칙"만 엄정하게
마련하고, 남은 문제는 시장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