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과연 미국을 향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가.

일본의 작가출신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최근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3탄을 예고한 것을 계기로 월가에서는 이 문제가 화제다.

이시하라는 "일본은 여전히 미국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라며
일본이 미국 재무부채권(TB) 전체의 10% 가량(약3천억달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이 미국국채를 한꺼번에 내다 팔 경우 미국 금융시장은 당장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본을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TB값은 이시하라의 경고 이후에도 상승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주말 30년만기 TB값은 20여년만의 최고치(수익률은 연 5.65%)를
기록했다.

이시하라의 경고와 달리 일본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여유자금을
전세계 금융상품 가운데 "가장 안전한" TB에 쏟아 붓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투자자들이 지난한당 동안에만 사들이 TB만도 5천8백70억엔 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인들이 이시하라의 주장과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일본 증권시장에서는 5월한달 동안 1천3백80억엔의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 나갔다.

이런 현실에 고무된 월가 사람들은 이시하라 류의 일본인들을 향해 "미국
국채시장에서 돈을 빼내갈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해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혼란의 와중에서 미국 금융시장이 오히려 성가를 높이고
있는 데 대한 자신감이다.

만에 하나 일본 투자자들의 집중매도 공세로 미국 채권시장이 흔들린다면
오히려 일본 자신이 더 큰 피해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역경고도 나오고 있다.

TB가 일본정부와 금융기관들의 주요 자금운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TB가 가장 안전한 자산이기 때문에 일본이 TB를 파는 순간에 일본자산의
건전성이 추락할 수 밖에 없다는 엄포다.

"까짓 것 그만큼 달러를 찍어내면 그만 아니냐"라는 장난 섞인 반응을
하는 축도 있다.

미국의 이런 반응은 이시하라가 모리타 아키오 소니 회장과 공동으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제1편을 펴냈던 지난 89년 당시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일본이 세계시장을 호령하고 있던 당시에는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 "일본
배우기"가 붐이 었다.

예일대의 제프리 가튼 교수는 "차가운 평화"라는 책을 통해 이시하라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었다.

그러나 가튼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당시 내 판단이 성급했었음을
인정한다" "전향"을 선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1일 "예(Yes)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일본에서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시하라 한 명 뿐일 것"이라고 비꼬았다.

미국의 욱일승천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이 엔화폭락과 대규모 금융부실로
신음하고 있는 요즘 월가에서 이시하라는 한낱 "돈키호테"로 치부되고
있을 뿐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