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컴퓨터 이찬진 사장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아래아 한글"사업을
포기하고 MS의 자금을 받아 들이기로 한 것은 척박한 국내 SW시장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다.

국내 SW시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품이 나와도 그 이튿날이면 시중에
불법복제 제품이 시판되기 시작한다.

일반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대부분의 PC에 "아래아 한글"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품은 13%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한컴 추산)

게다가 정부의 최저가낙찰제도가 경쟁사간 덤핑경쟁을 조장, 사업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투자비도 건지기 힘든 상황이다.

이사장도 MS와의 투자계약협정 체결을 발표하면서 "고질적인 불법복제,
공공시장 위축등 악화되고 있는 시장여건을 타개할수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한컴은 기술개발에 게을리 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사장 스스로는 "정치외도"로 기술개발과 경영에 소홀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또 사용자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사후관리(AS)가 뒤떨어진다
는 비난을 받아 왔다.

"아래아 한글"은 특히 메모리용량을 많이 차지하는 결정적인 단점을
갖고 있는데도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한컴이 최대의 경쟁자인 MS의 자금을 끌어다 쓰기로 한 것은 결국 국산
워드SW의 시장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아 한글"은 그동안 외국 워드제품으로부터 국내시장을 지켜온
"국산SW의 자존심"이었다.

세계 워드시장을 정복한 MS가 국내시장 공략에 실패한 것도 "아래아
한글"이 폭넓은 수요기반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MS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펴왔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한컴과 MS의 이번 투자협정을 두고 "MS가
버거운 상대와 경쟁하느니 차라리 모두 사버리자는 "자본의 논리"를
들고나왔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번 협정에 따른 국내 워드시장 장악이후 MS가 시장에서의 우월적인
지위를 활용, 자사가 앞으로 판매할 워드SW제품의 가격을 대폭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이번 한컴의 예에서 보듯 국내 패키지SW산업은 점점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가장 경쟁력있는 분야로 남아있던 워드시장을 외국에 내주게 됨으로써
이제 남아있는 SW분야 경쟁제품은 그룹웨어 인트라넷 정도이다.

그나마 그룹웨어 시장은 로터스의 "노츠"에 밀리는 양상이다.

인트라넷 분야는 SAP코리아 한국IBM 한국HP등이 공급하고 있는 전사적자원
관리(ERP) 개념의 기업 정보유통시스템에 위협받고 있다.

한편 이번 MS의 한컴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성사될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 협정이 한컴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MS가 직접
시장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MS가 사업권을 사들이지 않고 사업자체를 포기토록한 것은 제재대상
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 한우덕 기자 woody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