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돼지꿈 꿨어"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16일 새벽 자택을 떠나 방북길에 오르며 꿈얘기부터
했다.

"고향에 가니까 좋지 뭐"라며 다소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던 정 명예회장은
돼지꿈이 못내 좋다는 듯 이내 활짝 웃어보였다.

소를 몰고 가는데 돼지꿈이라.

대안대길의 형국이다.

"솔밭이라는 이름 그대로 키 작은 다복솔이 온통 뒤덮이고 푸르른 바다를
끼고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이라는 말이 딱 떨어지는 새하얀 모래밭, 봄이면
온통 붉게 피어나는 산기슭의 진달래들, 명사십리 해당화보다 더 화려한
해당화..."(자서전에서)

검은색 다이너스티 리무진에 올라선 그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리운 고향 통천 해변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깨끗하게 빨아서 저기 걸어둬요.

다음에 와서 입게"

지난 89년 첫 방북길-.

그는 고향을 떠나며 작은어머니한테 와이셔츠 한 벌을 내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약속을 지키게된게 반가울 뿐이다.

사실 그 때는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 사람들(당 관계자) 40여명이 늘 따라다녀 친척들은 안될 말은 단
한마디도 안했고, 그 역시 불필요한 말을 한마디도 안했다.

고향 친척들에게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제대로 얘기하지 않았다.

작은어머니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저 아무소리 말구 있다가거라"하던
얘기가 고작.

그리고 그땐 혼자였다.

회사 사람 3명이 따라 갔지만 가족 가운데 혼자 고향 냄새를 맡는다는건
어째 씁쓸했다.

하지만 이젠 순영 세영 상영 세동생이 함께 나섰다.

한살때 고향을 떠난 몽구와 고향을 알지도 못하는 몽헌이 함께 한다는게
더없이 든든하다.

"강원도 통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운의 꿈을 안고 아버님이
소를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후 긴세월동안 저는 묵묵히 일 잘하고 참을성 있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판문점에 가진 출발인사말에서 소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 그 한마리 소가 천마리 소가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에 빚을 갚게 된
셈이다.

고향 통천에 대한 보은이자 아버지에게 꼭 바치고 싶었던, 아들의 때늦은
선물이다.

더욱이 판문점이다.

열여덟 어린 시절 무작정 서울을 찾아 달려온 그 길이다.

철원의 금강산 가는 철길이 열리면 그 길로 다시 한번 고향을 찾을 생각이다

이번에도 와이셔츠 한 벌은 걸어놓고 와야할 것같다.

정주영 개인의 고향방문이 아닌 남북간 화해와 평화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금강산 관광 개발에 애착을 갖는 것은 남북통일은 민간교류부터라는
생각에서다.

< 김정호 기자 j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