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부이남 지방에는 예부터 보리 뿌리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관습이 전해온다.

입춘에 보리뿌리를 캐서 뿌리가 세가닥이 넘으면 풍년, 두가닥이면 평년,
한가닥이면 흉년으로 점을 쳤다.

지방에 따라 정월에 점을 치는 곳도 있다.

지금은 보리농사가 크게 줄었으나 예전에는 보리가 주곡의 하나로 많이
재배됐다.

보리농사는 북부지방에는 없고, 중부지방에는 적고, 남부지방에는 많다.

그래서 보리뿌리점도 남부에는 다양하다.

요즈음 한창 보리수확철이다.

시골서 낮일을 하다가 햇보리로 밥을 지어 열무김치나 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텃밭에서 방금 따온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함께 먹으면 특히 별미다.

식후 햇보리밥의 누룽지로 만든 숭늉의 미각은 훌륭하다.

경제가 발전해서 지금은 끼니걱정이 거의 사라졌으나 60년대 이전 우리
민족은 정말이지 넘기어려운 "보릿고개"란 것을 가지고 살았다.

일제시대에는 벼를 공출로 빼앗기고 보리가 익기전 먹을것이 없어 무진
고생을 했다.

당시 보릿고개는 태산같이 높았다.

보릿고개에는 딸네집도 가지 말라고 했다.

시인 최절로는 이렇게 슬퍼했다.

"종달이 울며/앞들 옆들 날라도/해 긴날 찾아 드는/보리고개 아흔 고개/
주린 허리 돌담 마을/성급히도 달려 오네/들언덕의 쑥나물/간추려 뜯어 와서/
보드란건 님상에다/센 것은 내 먹지만/목마다 걸린 내음/님 얼굴 보며 눈물
짓네"

1973년 국민1인당 보리소비량이 39.3kg이었다.

그후 크게 줄어 지난해는 1.6kg을 소비했다.

올해 전국의 보리 재배면적은 8만3천ha로 이중 3만5천ha에는 맥주보리를,
나머지에는 일반보리를 심었다.

그런데 생산시기가 늦은 일반보리의 경우 80%가량이 붉은곰팡이병에 걸려
식용에 곤란할 것 같다 한다.

지난 5월 8~10일사이에 고온에다 비가 겹친 특이한 날씨때문에 전국적으로
일시에 발병했다.

건강식이 된 국내산 보리밥 구경이 힘들게 됐다.

농림부가 피해입은 보리를 차등수매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차제에 우리도 농산물보험제도를 도입할 수는 없는지 궁금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