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 경제협력체(APEC) 무역자유화 계획이 삐걱거리고 있다.

22일 말레이시아 쿠링에서 열린 APEC통상장관 회담에서 18개 회원국들은
내년부터 교역이 자유화될 분야를 둘러싸고 논쟁만 거듭했다.

때문에 23일 끝나는 회담에서 합의점이 도출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열렸던 APEC실무회의에서도 이견만 노출됐다.

회권국들은 조기 무역자유화 대상을 놓고 3대세력으로 분열되어 있다.

일본등 아시아권은 자유화 대상 분야를 축소하자는 주장인 반면 미국등
북미와 오세아니아권은 원래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칠레등 중남미 국가들은 한술 더 떠 자유화 분야를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무역자유화 협상은 작년 캐나다 뱅쿠버에서 열린 APEC정상회담의
작품이다.

정식 명칭은 "분야별 자발적 조기 무역자유화(EVSL)"

연간 교역량이 1조5천억달러에 달하는 환경 에너지 수산 임업 문구류
보석 의료장비 화학 통신등 9개 분야의 비관세장벽과 관세를 인하 또는
철폐해 나간다는 게 내용이다.

개시 시기는 99년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일본 경기침체와 아시아 외환위기로 예정대로 무역자유화를
추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아시아권에서 제기됐다.

급기야 일본은 지난주 실무회담에서 일부분야를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임산물과 수산품에 대해서는 조기 무역자유화는 유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도 일본편에 서있다.

이에대해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등은 예외없는 조기 자유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저런 사정을 다 봐주다가는 APEC의 원대한 무역자유화는 실현 불가능
하다고 반박한다.

1차로 이들 9개 분야의 무역자유화를 계획대로 완성해야 식품 자동차 민간
항공기 비료 고무 오일시드등 6개 분야의 2차 무역자유화도 일정대로 추진할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현실론(아시아권)대 명분론(북미권)"의 싸움이다.

이 와중에 칠레와 멕시코등 중남미는 자유화 분야를 9개 이상으로
확대하자고 주장하면서 패키지로 묶어 일괄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안그러면 EVSL에 불참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 문제는 오는 11월의 콸라룸푸르
APEC정상회담으로 넘어간다.

이 경우 EVSL은 정치이슈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