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더 거둘 것인가, 아니면 돈을 풀 것인가.

정부와 여당은 구조조정에 따른 재원마련 방안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궁극적으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의
문제다.

만약 재정을 통해 구조조정자금이 마련되면 국민들의 세금부담은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이에 반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통해 대규모 공공채권을 발행하면 물가가
크게 오른다.

현재 집권여당인 국민회의는 재정정책의 확장을,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는
통화량 확대를 각각 주장하고 있어 조정결과가 주목된다.

어느 방향이든 국민들의 전체적인 부담수준은 비슷하다.

그러나 향후 경제운용구도와 국민경제생활의 질은 크게 달라질수도 있다.

구조조정비용이 전가되는 경로와 계층별 부담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구조조정비용 =문제는 실업자들이다.

한계기업 퇴출과 부실금융기관의 대대적인 정리에 따라 올 하반기
실업자수는 2백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에 대한 실업급여지급 생계비보조 재취업알선 직업훈련 등의 비용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조성돼있는 8조4천억원의 실업대책자금으로는 터무니없이 모자란다는게
대다수의 시각이다.

국민회의가 세수확충과 외자조달을 통해 25조7천억원의 구조조정자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같은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부측도 추가재원마련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실업자수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한계기업 정리에 따른
공공비용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재정정책의 장단점 =국민회의가 제시한 대안은 새로운 세목을 만들고
기존 세율은 올리자는게 골자다.

이 방안대로라면 국민들은 7조3천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특히 모든 봉급생활자의 봉급에서 일정비율을 떼내 고용세를 신설하자는
주장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구조조정에 따른 국민적 공감대의 확산으로 조세저항을 피할 수있다면
비교적 손쉽게 재원을 마련할 수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채택하기는 어렵다는게 정부의 시각이다.

저마다 어려운 상황에서 이처럼 가혹한 징수행정을 펼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재경부 세제실 관계자는 "세원이 뚜렷하게 노출돼있는 임금근로자에게
고용세를 부과할 경우 세부담의 형평성문제가 제기될게 뻔하다"고 말했다.

휘발유세의 인상을 통해 3조7천억원의 세금을 더 걷겠다는 방안도 비현실적
이라고 판단한다.

경기침체기에 유류관련세를 무한대로 올릴 수 없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유류관련세는 올들어 수차례에 걸쳐 인상돼 대폭적인 추가인상은
불가능에 가깝다.

해외차관자금도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실업자금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통화정책의 장단점 =재경부가 최근 급속하게 진전시키고 있는 논의는
통화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이다.

실직자수의 증가에 따라 실업관련예산을 늘려가기 보다는 실업자 수를
원천적으로 줄이는 방안이다.

하락일변도의 경제성장률도 통화팽창을 통해 고삐를 잡아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게되면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재원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의 약점은 고물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재정을 통한 지출대신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공공채권을 인수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물가가 오르게 된다.

경우에 따라 연 10%이상의 고물가구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물가상승은 특히 누진적인 세율구조를 갖고 있는 조세와 달리 소득수준이
낮은 서민층에 많은 부담이 간다.

집권여당은 이를 달가와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국제통화기금(IMF)이 통화팽창과 물가상승을 용인할
것인가의 문제다.

IMF 프로그램의 특징이 긴축재정 긴축통화에 있는 만큼 향후 상당한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 전망 =어느 쪽이든 장단점을 갖고있기 때문에 양쪽 정책수단들을
혼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

재경부는 변호사 의사등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고 유류관련세율을
일부 상향조정할 계획이다.

해외차관과 공기업매각 자금도 주변의 여건에 따라 신축적으로 투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한국은행에서 무한대로 돈을 찍어낼 수는 없는 만큼 통화공급량을
적당한 선에서 늘리는 방안을 놓고 IMF와 절충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 조일훈 기자 ji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