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원 < 외대 교수. 언어학 jwyoo@maincc.hufs.ac.kr >

모두들 21세기는 정보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21세기에 가장 유망한 사업은 정보산업이라 강조한다.

정보란 무엇인가.

정보란 이용가능하게 가공되어 의미를 갖는 자료이다.

따라서 정보화란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알맞게 손질하여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렇다면 국어 정보화란 무엇인가.

국어정보화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정보의 국어화이다.

만일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는 많은 고급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
우리말로는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국가 경쟁력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우리말로도 우리국민이 귀하고 질 좋은 온갖 정보를 쉬이 얻을 수 있도록
정보생산자들이 노력해야 한다.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든 역사나 철학, 문학과 같은 인문 과학적 지식이든
우리말로 모든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야만 우리가 다른 어떤
외국인들과도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어 정보화는 국가 경쟁력에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따라서 국어 정보화는 전산학을 하는 전문인력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보의 생산자인 인문 사회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정보가 상품이라면 당연히 생산자와 유통업자 소비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중에서 정보 생산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국어로 된 좋은 정보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자연과학에만 치중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정보의 원료를 생산하는 인문 사회학자들이 신명나게 우리말로 된
정보를 만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국어 정보화의 둘째 의미는 국어로 쓰인 자료를 자동으로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여 유용한 정보로 만드는 도구를 만드는 일이다.

즉 국어 정보 처리기술의 개발이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엄청난 양의
정보가 생산되고 또 전산망을 통하여 재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런 넘쳐나는 정보를 사람이 일일이 개입하여 처리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말을 분석하고 이해하여 유용한 정보를 자동으로 만들어
알려주는 시스템의 개발은 21세기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컴퓨터에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이다.

언어 정보는 사전과 문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전은 각 낱말을 이해하고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모아 놓은 어휘 목록이고 문법은 낱말들이 모여 문장을
만들어 가는 규칙들의 모음이다.

그러므로 컴퓨터에 우리말을 가르치려면 컴퓨터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 전자 사전을 구축하고 컴퓨터에 알맞은 문법 규칙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이 작업은 둘다 힘들고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또 어떤 한 분야의 전문 인력으로만 꾸려 나갈 일이 결코 아니다.

훌륭한 사전 편찬자가 있어야 하고 컴퓨터에 알맞은 문법을 만들어 줄
언어학자들도 필요하다.

물론 이들의 작업을 잘 이해하여 적절하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도
있어야 한다.

전체 시스템을 설계하고 예상되는 모든 문제를 꿰뚫어 대책을 세우는
시스템 디자이너도 있어야 한다.

국어 정보처리 시스템의 개발은 한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사명감만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

국가와 민간기업, 대학과 연구소가 모두 협력해야만 성공의 가능성이 겨우
보이는 일이다.

국어 정보화는 국가 경쟁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의 얼이라는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국어 정보화에 실패하여 우리말보다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사용해야만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다른 외국 사람들과 경쟁할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의
앞날은 어둡기만 할 것이다.

그러기에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국어 정보화는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천부적인 낙관론자도 걱정을 안할 수 없다.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셔서 우리 민족이 중국의 문화적 지배를
더이상 받지 않아도 되게 만드셨다.

정보시대인 21세기를 맞는 지금 대왕의 크고 깊은 뜻이 후손의 못남으로
말미암아 물거품이 될까 걱정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