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 < 서울대 교수 / 신기술창업네트워크센터장 >

벤처기업의 메카로 불리는 실리콘밸리가 언제 생겨났는지에 대해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휴렛과 팩커드에 의해 설립된 휴렛팩커드사를 그 시조로
보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는 1938년 당시 스탠퍼드대학의 학생이었고 그
지도교수는 프레드 터만이었다.

터만 교수는 동부로 직장을 찾아 떠나려는 이 두 학생을 설득해 휴렛의
집 뒤에 있는 차고에 전자계측기 회사를 설립토록 했다.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은 1971년 당시 주 산업이었던 실리콘 칩에 연유해
생겨났다.

5년 후인 1976년에 애플컴퓨터사가 또 다른 차고에서 태동했으며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열리게 됐다.

이러한 개인용 컴퓨터 붐이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으나 일본 개인용
컴퓨터산업의 위협을 받게 돼 존폐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그래서 제조공정을 개선하고 타 분야, 특히 컴퓨터소프트웨어로 그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일본의 위협에 대응하였다.

애플은 1992년 이후 12만5천명의 고용증대를 이룩했으며 매년 수출액이
두배로 증가해 현재 4백억달러(36조원)에 달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응용소프트웨어 운영시스템 데이터베이스 인터넷 컴퓨터
이용설계 네트워킹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는 칩이나 소프트웨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업종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생체공학 환경공학 등으로 그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을 역사적 지리적 배경에 비추어 다음에서
찾고 있다.

인력 풀의 규모와 유연성, 인력공급자들의 네트워크 구성, 벤처캐피털의
용이성, 우수한 교육환경과 연구여건(스탠퍼드대 버클리대) 등이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보다 이러한 조건들에 부합하는 곳은 여러 군데에 있다.

예를 들면 "보스턴 루트128"은 벤처캐피털 및 연구여건에서 실리콘밸리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첨단산업의 육성과 벤처창업에 있어서 실리콘 밸리에 못미친다.

최근의 분석에 따르면 벤처창업 문화에 그 요인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리콘 밸리의 경제는 창조적 파괴 또는 유연성 있는 재활용에 의존한다고
볼수 있다.

즉 오래된 기업이 폐업되고 새로운 기업이 창업될 때 자본 아이디어 인력이
재분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나 기술적인 요소보다 창업문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성공을 가져온 문화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실패와 변절에 대한 관용, 위험성 모색, 지역사회로의 재투자, 변화에
대한 열정, 다양성, 모든 사람의 참여 등이다.

이러한 창업문화는 기성세대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며 가장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들에 의해 오랜 기간을 두고 주도되어
왔다.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 벤처창업이 미국 만큼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도
이러한 벤처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에 개최되는 전국 규모의 대학생 벤처창업박람회
는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참신하고 패기있는 대학생들의 기술개발과 연구활동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창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정부 관련 부처에서 추진되고 있는 벤처창업에 대한 지원정책
도 단기적인 고용증대 효과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이러한 벤처문화를
조성하는 인프라 구축에 초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