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느강을 배경으로 파리시청과 마주보고 있는 레알(Les Halles)지구.

이곳의 모토는 "개발은 보존을 위한 것"이다.

"개발과 보존"은 어울리지 않는 표현같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펑크족과 미술지망생들이 초현대식 건물과 고풍스런 화랑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처럼.

레알상가(Forum Les Halles)와 퐁피두문화예술센터로 대변되는 레알지구는
"프랑스 도심재개발의 교과서"다.

지하공간을 상가로 활용, 주변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문화재를 보존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강제철거를 지양하고 거주자들의 재산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해 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개발을 완료한 첫번께 케이스이기도 하다.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거주자에게는 토지지분에 해당하는 상가를 배정했다.

점포없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에겐 상가에 입점할 수 있는 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획기적인 개발안은 상인들과 지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개발완료후 상가 입점자의 60%를 이들이 차지할 정도였다.

"사업기간이 긴 재개발의 경우 원주민입주가 10% 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레알상가 홍보담당관 오스만 말로)이다.

레알지구의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리최초의 노천시장이 자리잡았던 레알지구는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에밀 졸라가 "파리의 위장"으로 표현할만큼 심장부였던 곳.

1주일에 두번씩 시장이 열려 파리시민의 식료품시장으로 번창했었다.

하지만 시장을 드나드는 트럭으로 교통이 번잡해지면서 다른 용도의
재개발방안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레알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69년이다.

주역은 "몽파르나스 타워"개발을 강행한 퐁피두 대통령.

파리도심에 위치한 노천시장 주변을 철거해 상업시설과 업무시설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단지로 개발한다는게 원안이었다.

하지만 앞서 개발된 몽파르나스 지구가 급격한 환경변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음에 따라 레알프로젝트는 전면적으로 손질됐다.

당초 세웠던 26.7ha의 계획범위가 15ha로 축소되고 9만평방m에 달하는
거대한 무역센터 건설도 취소됐다.

대신 시장이 있던 곳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지하는 재래식시장규모에 맞먹는
상가를 입점시키는 쪽으로 추진됐다.

파리시청은 1974년 건축가 바스꼬니(Vasconi)의 작품을 설계안으로 확정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1979년 문을 연 레알상가는 돌출부가 우산모양을 지니는 지하4층 연면적
4만9천평방km의 초현대식 건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통풍, 자연채광 시스템으로 지하상가의 문제점인 공기오염과 음침함을
개선한게 특징이다.

유통시설의 활성화를 위해 상가 아래에는 4개의 지하철 노선과 3개의
교외고속전철(RER)선을 연결, 파리 어느 곳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현재 이 상가에 입점한 점포는 모두 6만여개.

2평 규모의 의류점에서부터 3백평 규모의 수영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멀티컴플렉스 영화관 병원 전자상가 등 거의 모든 업종이 있어 이곳을
방문한 쇼핑객들은 원스톱쇼핑이 가능하다.

퐁피두 문화예술센터가 지어진 곳은 원래 레알시장에서 쏟아져 나온 쓰레기
처리장.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리차드 로저스의 공동으로 설계한 이 건물은 20세기
전위건축물로 유명하다.

투명성을 주제로 길이 1백66m, 폭 60m, 높이 42m의 4면형으로 지어졌다.

철근구조와 유리벽 및 강렬한 건물색조가 특이한 인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연간 8백만명의 방문객이 찾아오는 관광명소이자 현대건축물의 보고다.

건물의 모든 장식이 배제되고 건물의 기능적 요소인 승강기 에스컬레이터
계단 환기통 수도관 등이 전부 외부로 노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퐁피두센터 인근에는 올로그라피 박물관, 1532년 지어진 쌩튀스따쉬성당,
파리에 남아있는 유일한 르네상스 시대분수인 결백한 자의 분수(Fontaine
des Innocents)가 자리잡고 있다.

레알상가와 퐁피두문화예술센터를 제외하고는 옛모습 그대로다.

레알지구는 현대식건물로 탈바꿈했지만 인파로 웅성거리던 옛거리 풍경은
면면히 살아있다.

문화재보호와 지역개발을 조화시킨 성공사례인 것이다.

< 김태철 기자 synerg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