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제학자는 "유능한 경제학자"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예언이 빗나갔을때 그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조섞인 이 표현대로 사실 아시아의 위기를 제대로 예언했던 학자들은
많지않다.

정작 심각한 환란이 시작되고 예상보다 장기화되자 이런저런 "학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다일수도 있고 그중 어느 것도 아닐수 있다.

원인과 근인이 다르고 사람마다 시각이 천차만별이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빨리 극복해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왜 아시아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 이론들을 정리한다.

<> 크로니 캐피털리즘(crony capitalism)론 =정부의 특혜를 받은 대기업들이
무모하게 외자를 빌려다 "부채경영"을 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나 금융기관은 외채의 규모나 용도가 적정한지 감독하지 않았고
기업들은 정경유착을 통해 빚으로 덩치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서방언론들이 펴는 주요 논조로 근본적인 문제를 짚은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도 이를 환란의 한 원인으로 규정했다.

크로니 캐피털리즘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정책에서 유래된 말이다.

해밀턴은 신생독립국인 미국이 경제력을 빨리 키우려면 영국처럼
대자본가들을 육성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위해 특정자본가들에게 특혜를
부여했다.

<> 영양떼 이론 =미국 MIT대학의 레스터 서로 교수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본의 움직임을 영양떼의 속성에 비유해 제기한 이론이다.

양떼를 공격하는 사자의 목표는 모든 영양이 아니라 그중의 한마리 뿐이다.

그런데 영양떼는 사자의 기척만 느껴도 모두 혼비백산해 달아난다.

마찬가지로 아시아에 투자돼 있던 자본도 태국 바트화가 공격을 받자 모두
빠져나가기 시작해 아시아 전역으로 자본이탈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환란의 직접적인 요인을 지목한 논리다.

<> 음모론 =아시아 환란은 음모세력에 의해 야기됐다는 주장으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그 대변자격이다.

음모세력으로는 조지 소로스로 대표되는 유태자본이나 미국정부가 지목되고
양자의 공모라는 주장도 있다.

"유태자본이 화교자본을 견제하기 위해 동남아 통화를 공격했고 미국정부는
21세기의 경쟁자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를 조장했다"는 식이다.

조지 소로스나 미국정부는 이같은 주장을 허황된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 일본책임론 =일본의 경기침체가 화를 불렀다는 이론이다.

경기침체로 인해 일본내의 자금수요가 줄어들자 일본금융기관들은 신용이
좋은 서방의 기업과 투자금융회사들에 저금리로 대규모의 돈을 빌려줬다.

이 자금은 다시 태국 등 동남아로 흘러들어가 부동산 과잉투자 등 버블을
형성했다.

그러다 태국에서 거품이 터지자 일본은 서둘러 자금회수에 나섰고 그 여파가
아시아 전역에서 서방자금의 철수사태로 확대됐다.

실제로 한국에서 환란이 본격화되는데는 일본자금의 급작스런 이탈이 한
계기가 됐다.

게다가 일본은 아시아 국가의 시장역할을 해야하는데 내수경기 침체로
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