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주현 기자 현지를 가다 ]

환란이 쓸고 지나간 아시아의 도시들은 "시간이 역류하는 지대"였다.

외환위기를 맞고 1년이 지났지만 넘어간 것은 달력뿐.

거리의 표정은 한 10년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다.

경제발전의 "바이블"이었던 아시아 성장신화는 더이상 본받아서는 안되는
"추락의 상징"으로 몰락하고 있었다.

후텁지근한 방콕 국제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면 고가도로 양편으로
짓다만 고층건물들이 괴물처럼 늘어서 있다.

도로 곳곳을 파헤쳐 놓은 채 중단된 지상철 공사장.

세우다만 교각 위로 삐죽삐죽 나온 철근에서는 벌건 녹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1년전만 해도 크레인의 굉음이 울려퍼졌던 "약동의 현장"들이었다.

고급상점이 몰려있는 방콕 빠뚬완 거리는 이제 떨이상품 거리로 바뀌었다.

쇼윈도마다 세일 안내문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두집 건너 한집은 아예
셔터를 내렸다.

교통체증은 여전했지만 동남아 특유의 낙천성은 이미 그들의 얼굴에서
사라졌다.

자카르타도 마찬가지.

인도네시아 발전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자카르타 시내 글로독 지역의 전자
상가.

불타버린 건물과 깨진 유리창은 두달이 지났는데도 앙상한 뼈대만 남겨
놓고 있었다.

폭격을 맞은 도시를 방불케 했다.

환율이 곡예를 계속하면서 매일 가격표를 갈아붙여야 하는 수입품점.

길거리에서 신문이나 음료수를 팔아 생계를 부지하는 실업자.

택시비를 "달러로만 받겠다"고 윽박지르는 택시 운전사..

중국반환 1년을 맞은 홍콩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낮선 방문객에게 "위안(원)화가 어찌될 것
같으냐", "페그제(홍콩의 환율제도)가 지탱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먼저 던져댔다.

상점들은 하나같이 "대감세일"이라고 쓴 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그것은 세일안내문이 아니라 경제가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는 불안의 확인
문서였다.

아시아 속의 유럽, 싱가포르-.

잘 다듬어진 이 도시국가에도 "이제는 우리 차례"라는 공포감이 서서히
내려 앉고 있었다.

환란의 도시들은 이렇게 퇴행하고 있었다.

"태양이 내리쬐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동쪽으로 가야할지 서쪽으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고 태국 금융재편청의 아마렛 실라온 청장은 긴 한숨을
토했다.

북상해 올라왔던 환란경유지를 되집어 보는 "98 아시아 기행"은 역류된
시간으로의 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