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선상의 중앙에 선 나라"

오늘의 한반도는 함석헌선생의 이 말을 떠올리게 한다.

남한은 지금 경제적 시련을 겪고 있다.

서울역 주변의 노숙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바로 옆에서 명퇴자 해고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직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한 축복으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북한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마이너스 6.8%였다.

산업시설의 90%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군부의 물리적 통제력으로 겨우 체제가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상황 아래 냉전시대의 행동
양식에 젖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전환의 실마리는 90년대초 중국의 변화에서 감지했어야 했다.

중국이 선부론을 펼치며 북한에 대한 식량과 기름 원조를 끊음으로써
북한은 내리 6년을 마이너스 성장에 허덕였다.

미국의 탈냉전 대외정책이 그때부터 자리를 잡아가자 우리나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만큼 탈냉전의 조류는 한반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제 남북한이 정말 "빅딜"을 해야할 때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보이고 있다.

바로 엊그제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이 분단 이후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다녀왔다.

실향민들은 고향가는 단 꿈에 부풀어 있다.

기업들도 이제 남북한 경협에 물꼬가 터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호사다마랄까.

공교롭게도 정 명예회장의 귀환길에 동해한 잠수정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마치 누군가가 교묘하게 짠 각본처럼 일이 꼬이는 듯 했다.

그러나 정부가 밝힌 "햇볕론"은 대승적 차원에서 견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

중국을 보면 답은 어느 정도 찾아진다.

이번 아시아 경제위기를 통해 중국은 또 한번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중국 통화의 평가절하 여부를 떠나 대국의 국제적 책임론이 거론될 정도로
경제적인 면에서도 위상이 뛰어올랐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한 이면에는 두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80년대 경제적 불황을 겪던 미국이 버린 고철들을 중국이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또 하나는 화교경제권을 활용한 것이다.

특히 대만 싱가포르 홍콩은 높은 임금에 시달리자 중국에 생산기지 역할을
맡기고 점포로서의 역할, 이른바 전점후창에 충실했다.

대만은 이를 통해 80년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90년대 경제발전을 구가할
수 있었다.

중국은 정경분리 원칙하에 더 큰 중화를 지킬 수 있었다.

경제적 실리를 늘려왔음은 물론이다.

남한이 북한과 제대로 협력만 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모범사례
를 중국이 보인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지금 살아남기 위해 대대적인 자산매각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국유자산을 서둘러 팔려고 하고 있다.

많은 설비들이 80년대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고철로 묶일 지경에 이르렀다.

기왕 처분해야할 자산이라면 한반도의 장기 경제발전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한도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강인덕 통일부장관도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조찬 모임에서 "남한에
남아도는 20조원어치의 유휴설비를 북한에 반출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미 어느 정도 방향은 잡혀있는 셈이다.

남북한이 서로에 유익하고 효과적인 "빅딜"을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이것이 국내 기업간 빅딜보다 훨씬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최필규 < 산업1부장 ph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