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서강대 교수 / 경제학>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금융권의 지반 흔들림이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지만 동네 모퉁이
조그만 마을금고도 아닌 버젓한 대로변 은행들도 부실하면 간판을 내리는
일은 그야말로 대지진이 아닐수 없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어제 5개의 부실은행을 영업정지시키고 같은 수의
우량은행에 하나씩 인수를 명령했다.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을 미달한 나머지 은행들도 임원교체
감자 인원.점포.조직의 감축 등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간판을 유지하게
된다.

이번 금감위 조치를 계기로 BIS 자기자본비율 충족은행들도 증자
외자유치 합병 등의 방법으로 대형화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도록
유도할 모양이다.

이래저래 은행권 전반의 대개편이 벌어지게 됐다.

은행은 여타 금융기관들과는 달리 지급결제기능이라는 공공재를 공급하는
관계로 정부의 남다른 규제와 보호를 받아온게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의 경우나 은행문을 닫게하는 데는 당국의 각별한 고려가
필요했고 가급적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처럼 점포망이 제한되는 단위은행제도를 취하는 경우에는 은행의
수도 많고, 그중에서 퇴출은행이 수시로 발생해왔다.

신규진입이나 인수합병 등 대형화 움직임도 활발했다.

반면 전국적 점포망을 허용하는 지점은행제도하에서는 일반적으로 당국의
진입.퇴출정책이 보다 신중한 경향을 보인다.

은행퇴출, 그것은 당국이 이제는 어느 금융기관도 부실하면 퇴출명령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표명이다.

근본조치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시장규율의 강화에 있다.

정상적으로 수익성 유동성 안전성이란 3차원의 상품이어야할 우리
금융상품이 종래에는 기껏 2차원 내지 1차원의 상품이었다.

즉 우리의 여유자금 보유자는 금리 높낮이만 따지고, 기간의 장단은
참조사항 정도로 알뿐 안전성 고려에는 소홀했다.

아니 자기판단으로 돈을 굴리다 금융기관이 망하면 정부책임으로
몰아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객들이 금융기관을 골라 거래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교육이 시작된 셈이다.

이번에는 예금자보호에 과도한 역점이 두어져 이같은 교육효과가 다소
감퇴된 느낌이 있지만 앞으로 부실징후가 있는 은행은 고수익상품을 제시해도
시장고객에 외면당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의문이 없을수 없다.

첫째, 대외공신력의 회복문제다.

아마도 서울 제일 두 큰 은행의 처리를 분명하게 매듭짓기 이전에는
큰 반전을 기대할수 없다.

둘째, 퇴출은행 선정기준의 객관성및 투명성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한한 시비여지 없는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

더구나 정치권 압력설도 있는 모양이고 보면 현 정권이후 소송제기
가능성이 다분하다.

셋째, 주주권행사가 여의치 않았고 정부의 입김이 강했던 상황에서
주주가 불이익을 앉아서 당하게 되었다는 불만은 당연하다.

넷째, 인수은행측에서도 자산인수내용에 대한 불만의 소지가 있다.

과연 우량채권만 넘겨받을 것인가.

다섯째,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의문시된다.

우량은행과 부실은행의 차이가 종이 한두장 차이이고 보면 우량은행마저
부실화될수 있다.

여섯째, 성업공사가 담당하게된 퇴출은행의 부실자산 인수부담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통화증발에 따른 물가 오름세, 채권발행에 따른 자금시장의 밀어내기
효과, 연기금 가입자의 수혜폭 축소 등이 불가피한 부담을 감내할 것인가.

일곱째, 정부정책의 일관성 문제다.

일관성이란 일정시점의 정책상호간, 일정한 정책의 시간간 두가지 측면
모두를 언급한다.

IMF 지원금융이후 정부는 금융건전성과 중소기업지원 사이에서 방황하며
은행경영을 진퇴양난으로 몰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여덟째, 요즘 정부의 은행개입은 3공시절 관치금융을 뺨칠만큼
세부경영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관치금융의 서슬이 더 날카로워질 우려가 있다.

며칠전 "콜금리 12%"를 지시한 청와대는 금융기관들이 급전을 융통하는
콜시장 생리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

그러고도 금융자율화이고 시장경제인가.

아홉째 과거 은행설립과 부실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

앞으로 정치권의 금융입김이 과연 자제될 것인가.

그러나 이상과 같은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 극약처방의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부실한 기관은 도태되고 건실한 기관은 발전적으로 진화를 거듭할수
있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