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씨네 "편지" ]]

올해초 한국영화계 최대의 화제는 "편지"였다.

불치병에 걸린 한 남자의 지극한 아내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서울에서만 8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서편제(1백3만명, 93년), 투캅스1(86만명, 94년)에 이어 역대 3위의
성적이다.

전국적으로는 2백만명이 보았을 것으로 제작사인 신씨네측은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편지"의 대성공을 처음부터 예측한 영화관계자들은 별로 없었다.

영화 자체로는 특별한 소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편지"는 할리우드영화같은 볼거리나 예술영화의 가슴을 파고드는
러브로망을 갖추지 못한 그저 한 남자의 순애보였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편지"의 성공요인을 작품성보다는 영화사측의 마케팅과
시대상황에서 찾고 있다.

우선 "편지"는 로맨틱코미디 일색이던 당시 극장가에 한국영화가 전통적으로
강점을 지녀온 "최루성 멜로물"이란 점을 들수 있다.

이 점이 새로운 메뉴를 원하던 관객들의 입맛과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IMF란 시대상황도 흥행에 도움이 됐다.

불황과 실업으로 고개숙인 남자들이 늘어나며 불치병에 걸린 남자주인공이
음울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뜻밖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신씨네의 신철 사장은 "당시 "울리는 영화"가 없는 상황에서 눈물을 통한
카타르시스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영화가 통했던 것 같다"고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물론 "두여자 이야기" "채널69" 등으로 실력을 닦은 이정국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도 무시할 수 없다.

자칫 "안봐도 뻔한 이야기"로 전락해버릴 소재에 남자가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수십통의 편지를 미리 작성, 차례대로 보내게 한다는 에피소드를 첨가해
극적 재미를 배가시켰다.

박신양 최진실이란 콤비와 동전 주전자 등 일상사물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카메라워크도 호평을 받았다.

멜로라는 전통장르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것이 상품가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씨는 "머리로는 허점투성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영화"라고 "편지"의 매력을 풀이했다.

다음은 영화사의 마케팅이다.

신씨네는 96년 "은행나무침대"로 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마인드를 가진 신생 영화사다.

이 회사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주연배우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들어
나가는 등 적절한 상품가치를 부여해갔다.

"편지"의 히트요인중 작품 자체보다는 외적 환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은
비디오 판매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지난 4월 비디오로 나와 현재까지 6만장이 판매됐다.

극장에서의 돌풍을 감안하면 실망스런 결과로 초기의 흥행열기에 다소
거품이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영화에도 이제 적극적인 마케팅개념이 도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