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영 < 미국 하워드대 교수. 경제학 >

한국의 금융위기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그것은 정부주도의 산업개입정책은 자본자유화가 진전된 상황에서는 더 이상
맞을 수 없다는 점이다.

높은 애버리지에 의해 고수익을 추구했던 과거의 기업경영방식은
고성장기에는 문제로 표출되지 않았지만 경쟁이 격화되고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기업이윤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 결과 기업도산이 이어지고 은행들은 대량의 부실자산을 떠안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국민 모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업과 금융에 대한 구조조정정책이 강도높게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정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단 실업자의 양산 등 부작용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조조정정책은 적절한 거시정책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추진방향도 올바르게 설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거시적 측면과 미시적 측면 모두에서 다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경제적 활동의 큰 틀을 형성하는 거시정책부터 살펴보자.

지난 5월 한국정부와 IMF는 거시경제운용방향을 새로 설정하였다.

통화총량의 증가율도 다소 상향조정되었지만 재정수지 적자도 GDP
(국내총생산)의 1.5%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거시적 기조가 다소 확장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BIS비율이
엄격히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통화가 쉽게 늘어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재정확대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확대.통화긴축의 정책조합에 따르게 되면 이자율을 높게 형성하게 된다.

그 결과 기업의 금융비용부담이 늘고 경제성장률도 필요이상으로 낮아지게
되며 결국 실업의 확대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정책조합으로는 구조조정의 비용이 확대될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산업생산기반마저 와해시킬 소지가 있다.

구조조정기의 특징은 금융시장의 불안이다.

금융부문의 불확실성이 실물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에는
통화정책의 중간목표가 통화총량대신 금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금리를 중간목표로 설정하게 되면 부작용도 있다.

즉 통화공급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며 물가상승압력이 당연히 높아지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하여 재정쪽에서는 긴축적 기조를 취해야 한다.

경제성장이 확대되면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고 환율이 상승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다소간의 환율상승은 수출을 촉진하게 되므로 경제성장을 더욱
높이게 되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엔화가 큰폭의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원화의 평가절하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다만 환율상승으로 원가측면에서 비용부담이 늘어나는 부작용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사.정간의 화합을 바탕으로 임금의 안정을 도모함과
동시에 정부도 인플레이션의 진정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불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미시적 측면에서의 문제는 현재의 구조조정정책이 한국경제의 약점
제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대외신인도 개선 등을 위해 필요하기는 하지만 약점만을 고쳐서는 현재의
난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활력이 있는 부문에 대해서는 자금이 흐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히 앞에서 살펴본 거시경제적 틀에 의하면 금융부문의 자금공급 역할이
중요하다.

더욱이 신용경색 현상으로 인해 통화공급이 늘어나더라도 자금수요자에게
자금이 흐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금융구조조정은 모든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보다는 우선 우량은행이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속히
마련해주어야 하겠다.

그리고 기업구조조정에서도 퇴출기업의 선정을 조기에 마무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일이 퇴출기업을 선정하기 보다는 기업구조조정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방법도 고려해 봄직하다.

한국사람들은 현재의 고통을 미소로 수용할 능력과 지혜를 가진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위기상황을 벗어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번 위기가 선진국형 경제질서를 정착시키는데 더 없이 좋은
기회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