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의 외교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90년 수교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한.러 관계를 매끄럽게
풀어야 할 과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8일 러시아측의 조성우 참사관 추방에 맞서 러시아외교관
맞추방이라는 초강수를 선택했다.

이는 여론과 외교적 관례를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거진 외교통상부와 청와대 안기부등 정부부처간
불협화음과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의 주도권 상실은 신정부의 외교정책노선
결정방식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4일이후 외교통상부는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중요성을 감안,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는 "온건론"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명분"을 중시한 청와대및 안기부등이 강경론을 펴면서 일거에
맞추방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최종 결정때까지도 외통부는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더라도 참사관보다는
직급이 낮은 외교관을 추방하는 "상징적"인 방안을 검토했었다.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 무위로 돌아갔다.

"힘있는" 부처의 강력한 주장에 외교통상부는 또다시 외교정책수립의
"변방"에 맴돌수 밖에 없었다.

8일 러시아가 추가보복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나서자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뒷수습의 책임만 외통부로 넘겼다.

아직도 여론과 부처이기주의, 명분론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한국외교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용준 < 정치부기자 juny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