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심각한 상황이 되면 으례껏 "일본모델"의 종언이
거론돼왔다.

지금까지 아시아각국은 일본을 경제성장의 모델로 삼아왔지만 이제와서
경제위기에 직면한 것은 일본모델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될 것은 1백년전에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메이지유신으로 근대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 개혁을 시작했지만 결국 김옥균의 갑신정변실패로
청일전쟁에서 진 청나라및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베트남과같은 운명을
따랐다.

일본에 패한 청나라의 양계초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변법운동을
시도했고 월남에서도 일본을 배우자는 동유운동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그러면 이들 나라의 개혁은 왜 실패했는가.

그것은 메이지유신이 지방분권적인 에도막부를 쓰러뜨리고 중앙집권적인
메이지정부를 수립한 구조개혁이었던 것에 반해 갑신정변, 변법운동,
동유운동은 무엇보다도 체제내의 일과성개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일본모델"의 종언이 거론되는 오늘의 상황은 1백년전과 닮은
점이 많다.

IMF의 관리체제하에 들어간이래 지금껏 비난의 대상이된 재벌도 한국과
일본에서는 경영의 기본에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다.

일본의 재벌은 에도시대부터 이미 자본과 경영이 분리돼 있었지만 한국의
재벌은 자본과 경영이 미분리된 상태여서 그것이 방만경영으로 인한 오늘의
경영파탄으로 이어진 원인이 되고 있다.

재벌이라는 명칭은 같아도 경영체질은 모델인 일본기업과 완전히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주식과 금융에 대한 자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재할인율은 현저히 낮다.

저금리는 빌리는측에 유리하지만 고금리정책은 자본가를 살찌우는 것이다.

일본의 경영풍토는 그러한 고금리가 빈부의격차를 낳고 금융지배로 이어진다
하여 기피해 왔다.

그것은 주식에 대한견해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미의 주식은 투자가의 이익이 우선이며 일본에서는 기업법인의 안정에
관심이 있다.

이익에 대한 발상이 다른 것이다.

그같은 점에서 볼때 기업중심인 일본모델의 종언은 금융기관및 자본가에
유리한, "부자가 점점더 풍요로워지는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