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소설 그림 영화를 넘나들던 시인 이제하(61)씨가 시집 "빈들판"
(나무생각)과 노래모음CD를 한꺼번에 냈다.

등단 40여년의 문학적 거름위에 노래꽃을 피운 "환갑 오빠"의 가수 데뷔인
셈이다.

노래모음은 당초 비매품으로 제작됐으나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방송신청곡과 음반구입 문의가 쇄도하자 도서출판 나무생각(대표
한순)이 시집과 함께 묶어낸 것.

CD에 수록된 노래시 10곡 가운데 절창은 "빈 들판" "사월비" "꽃밭의 독백"
등이다.

긴 바람소리로 시작되는 "빈 들판"은 시와 노래의 웅숭깊은 맛을 절묘하게
버무린 타이틀곡.

"빈 들판으로/바람이 가네 아아/빈 하늘로/별이 지네 아아/빈 가슴으로
우는 사람/거기 서서/소리없이/나를 부르네"

중간에 "어쩌나 어쩌나/귀를 기울여도"하고 애절함을 쟁여녹이는 창법은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수준을 넘어서는 대목이다.

네번째곡 "사월비"의 참맛은 "보소 보이소로 오시는/사월 가랑비/떠나간
그대같은 사월 가랑비"같은 특유의 리듬에서 비롯된다.

높낮이와 선율의 진폭이 큰 울림을 경쾌하면서도 탁음 섞인 음색으로
눙쳐올려 세상의 허기진 사랑들을 흥건하게 적신다.

서정주 시에 곡을 붙인 "꽃밭의 독백"도 무장무장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다.

중반부에는 "랩"까지 들어있다.

"시네마 비디오 인터넷 삐삐 피자 햄버거 아메리칸 스프에도 이젠 벌써
입맛을 잃었다"가 그것.

진짜 묘미는 바로 그 다음이다.

침묵의 끝을 타고 아득하게 울려나오는 "문 열어라 꽃/문 열어라 꽃".

원래시에는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라고 돼있지만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또다른 꽃밭을 열어 보인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