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기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저는 살아가는데 아무 불편을 느끼지
못합니다.

작업할 때나 식사할 때 심지어 돈을 셀 때도 오른팔을 씁니다"

13일 열리는 "98 명장명품 알뜰마당전"에 유일하게 목기를 출품한 서태랑
(58) 명장.

그는 국내에서 목기분야의 유일한 명장이다.

그것도 외팔이 명장이다.

그럼에도 "목기갈이" 신기는 이미 국내를 뛰어넘어 중국에까지 알려져있다.

그가 목기갈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6살때였다.

뜻하지않은 사고로 오른팔을 잃게된 것이 계기다.

그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믿지않는다.

지금도 한쪽팔을 앗아간 순간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40여년이 지났건만 그때 사고에 대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어린 마음에 수없이 죽음을 떠올렸다고 한다.

사고이후 1년 넘게 사람이 있는 곳은 무조건 피해다녔다.

불가피하게 외출할 때도 항상 팔목이 없어진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동네에 있는 목기갈이장이 생각이 났다.

목기갈이 기술을 배우고 익히면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사코 말리는 아버지를 끈덕지게 졸라 마침내 그 목기갈이장을 스승으로
받들 수 있었다.

그 스승밑에서 다른 제자들의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 견뎌내기를 3년.

정상인도 5년이상 걸리는 목기갈이 수련과정을 장애인인 그는 3년만에
끝마쳤다.

"한손인 주제에 무슨 목기를 만들 수 있겠어"

이 비아냥거리는 주변의 소리가 그를 오히려 강인하게 만들었다.

이 소리를 듣지않기위해 3년동안 잠한번 편히 자지않았다.

대신 새벽마다 몰래 나와 통나무와 씨름을 했다.

나중엔 청출어람 소리를 들으며 목기분야의 1인자가 됐다.

그는 신체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명장으로서 당당히 서게된 것이다.

그는 이제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목기갈이만 40여년 넘게 해온 셈이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제2의 목기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얼마전엔 중국으로 건너가 1년간 머물면서 20여명의 조선족제자들을
길러냈다.

한국의 목기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것.

여기에 그의 여생을 걸고 있다.

< 류성 기자 sta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