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 삼성경제연구소장 SERICWS@seri-samsung.org >

박세리 선수는 US여자오픈에 이어 크로거 대회에서도 우승하여 "확실히"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좋은 준비와 좋은 운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한국 경제도 한때는 박세리의 기세에 버금갈 정도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찬사도 받았다.

그러다가 긴장이 풀리고 너무 힘이 들어가 이젠 IMF체제라는 러프에
빠져있는 격이다.

박세리 골프를 잘 연구하면 한국 경제가 역전승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

첫째는 전략이다.

박세리는 작년초 미국으로 골프 원정을 떠났다.

국내 최고가 되면 작은 성취에 안주하기 쉬운데 더 높은 목표를 찾아나선
것이다.

세계 무대에서 초일류를 지향한 도전정신은 국제화시대에 경제쪽에 특히
필요하다.

미국에 가서도 실현가능한 목표를 잡았다.

금년 목표도 메이저대회 10위권내 입상이었다.

그래서 욕심을 안부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플레이하니 힘이 덜 들어가고
경기도 잘 풀렸을 것이다.

무엇에나 힘이 들어가면 잘못되기 쉽다.

한국 경제도 2000년대 초까지 세계 8대강국으로 진입한다고 너무 힘을 준
것이 아닐까.

IMF탈출도 "1년반 목표"에 집착해 서두를게 아니라 현실적 목표를 잡아
힘을 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둘째는 냉철한 경기 운영이다.

위기에 빠져도 당황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리는 자세야말로 칭찬받을만
하다.

US여자오픈에서 초반 5홀까지 4타 차이가 났을때 오히려 응원자들이
절망했다.

그러나 박세리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6홀에서 상대방이 무너지는 바람에 파를 하고도 3타를 만회해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만약 그안에 초초감 때문에 무리했으면 자멸했을지 모른다.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아는 것"이라며 "한타 한타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가짐이 바로 역전극의 바탕이라 볼 수 있다.

경제는 골프보다 더 긴 게임이다.

미국경제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본에 일패도지했으나 좌절하지 않고
총력전을 편 결과 지금은 역전승 상태다.

끈기를 갖고 준비를 하면 반드시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과거에도 월남특수, 중동건설 경기, 3저 호황 등 위기 때마다 찬스가 왔다.

찬스가 왔을때 붙잡을 수 있는 준비를 어려울때 해야 한다.

아직 초반전에 불과한 IMF 불황에 당황한 나머지 자포자기하거나 무리수를
쓰는 일이 없어야겠다.

셋째는 정신적 기술적으로 기초가 튼튼했다.

박세리는 US여자오픈 연장전 18번홀에서 드라이버샷이 물가 깊은 러프에
떨어져 위기를 맞았다.

그때 결연히 구두를 벗고 물속에 들어가 일단 밖으로 쳐냈다.

그 위치에서 공을 안전하게 잘 친다는 것은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다.

우선 승부수를 띄워 보고 싶은 욕심의 유혹을 눌러야 하고 다음 기술적으로
완벽한 트러블샷을 칠 수 있어야 한다.

정신적 기술적으로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박세리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세계 최고의 리드베터 코치에게 체계적인 지도를 받았고 그것을 오랜 연습
끝에 몸에 익혔다.

그런 체력과 정신력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잘 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2주동안 연속으로 9라운드(US여자오픈 5라운드, 크로거 4라운드)를 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초체력을 요한다.

정상의 선수들이 겨루는 메이저 대회의 우승은 기력 체력 지력이 최상의
조화를 이뤄야 가능하다.

그것은 평소 고통스럽지만 끈질긴 반복 훈련이 쌓여서 이룩되는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평소 기초체력 없이 세계 경쟁에서 어떻게 이길 것이며 경제를 어찌
정상으로 끌고갈 수 있겠는가.

한국 경제의 위기도 평상시 기초를 튼튼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요행에 의한 반짝 행운은 오래 못간다.

긴장을 풀지 말고 고통스런 기초 다지기를 계속 해야하는데 우리는 그걸
소홀히 했다.

그래서 한국 경제는 지금 러프에 들어가 있다.

한국 경제의 정신적 기술적 기초실력으로 보아 박세리같은 멋진 탈출보다
페어웨이에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조급한 마음으로 핀을 바로 노리거나 관중을 의식해 힘주고 치다간 오히려
물에 빠질 수 있음을 알아야겠다.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지만 나라경제는 영원히 장갑을 벗지 않는
영구전이다.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기초를 다지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