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강우석.

영화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시사회에서 참석자들이 내지른 탄성이다.

무엇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그의 발빠른 감각에 대한
감탄이다.

강우석 감독은 영화계에서 흥행사로 통한다.

서울에서만 각각 86만과 7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투캅스"1, 2편이 그의
작품이다.

그러다보니 콧대높은 대기업 영화사 중역일지라도 강 감독이 나타나면
현관까지 뛰어나와 영접한다는 우스개소리도 들린다.

영화 "생과부..."에서 강감독은 다시 한 번 흥행감각을 과시했다.

괴기담과 로맨틱 코미디 바람이 충무로를 휩쓸고 있을 때 그는 이 시대의
아픔인 IMF와 "고개숙인 남자"를 들고 나왔다.

그것도 직장일에 남편을 빼앗겨 과부아닌 과부신세가 된 여인의 법정
소송이란 기상천외한 소재를 통해서다.

영화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면 이작품은 발상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강우석은 "바쁜 남편 때문에 부부생활을 못하므로 2억원을 손해보상하라"는
황당한 재판을 진행시키며 "회사인간"의 비애를 그려나간다.

자극적인 대사로 관객을 웃길 줄도 안다.

영화의 중심축은 회사에 죽도록 충성했지만 대기발령을 받은 추과장
(문성근)과 솔직한지 멍청한지 헷갈리는 그의 부인 이경자(황신혜)부부,
둘다 변호사로 법정에서 남.여대결을 벌이는 명성기(안성기)와 이기자
(심혜진)부부 두쌍이다.

처지는 다르지만 모두 부부생활에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생과부"는 사회적 현안으로 보편화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법정영화는 정교한 논리와 치열한 시대정신이 담겨진다면 깊은 감동을
줄수있는 장르다.

"생과부..."는 법정영화란 형식을 택했지만 논리 대신 웃음을 강조함으로써
동시대의 아픔을 반영하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워커홀릭"(일중독자)을 내세웠으나 그가 왜 모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에 집착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고도성장시대의 낙오병에 가까운 최과장의 캐릭터에 IMF시대에 발기력마저
상실한 실직가장이미지를 덧칠한 것도 부자연스럽다.

자연히 에피소드들은 하나의 주제로 결집, 감동으로 치닫기 보다는 따로따로
떨어져버린 형국이 됐다.

IMF는 영화계가 어떤 형식으로든 담아내야 할 숙제이다.

강우석이 첫발을 내디뎠으니 이제 예리한 풍자의 칼날로 어두운 시대를
해부하는 것은 뒷사람의 몫으로 남았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