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IMF체제에 접어든 이후 주한 외국기업인과 단체들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정책건의나 투자유치활동 참여 등 활동범위가 눈에 띄게 넓어졌고 발언
수위도 높아졌다.

시장규제완화 등 국적에 상관없는 정책건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나
대한상공회의소등 국내경제단체를 무색케할 정도로 잘 먹힌다.

주한외국기업인의 달라진 위상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무역투자진흥대책회의
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회의때마다 주한 외국인기업인들의 자리가 준비된다.

쇼가 아니다.

이들의 코멘트는 소관부처에 내려보내지고 조치결과가 일일이 체크된다.

과천 경제부처들도 외국기업인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투자환경설명회는 산업자원부와 통상교섭본부가 순회공연식으로 연다.

재정경제부도 거든다.

국내경제단체나 관변연구소들도 뒤질세라 외국인초청 프로그램을 다투어
만든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나 한독상공회 사무총장같은 단골들은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본업에 지장이 생길 정도다.

이쯤되면 주한외국인 단체들의 말발이 세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중에서도 주한미국상공회의소와 주한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일본기업인들의 모임인 서울저팬클럽 등 3개 단체가 돋보인다.

요즈음 정부에서 내놓은 규제완화정책 치고 연초에 이들 3개 단체에서
지적하지 않는 것이 드물 정도다.

다음달부터 양주 등 수입상품을 팔 때 수입원가를 표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연녹지에 할인판매점을 무제한 설치할수 있도록 한 것이나 전기제품에
대한 정부의 안전검사폐지 등도 직간접적인 로비성과다.

외국화장품업체가 공장을 직접 세우지 않고 국내업체에 위탁생산할수 있게
된것도 EU 상공회의소의 숙원이었다.

투자유치에도 일조를 하고 있다.

지난번 대통령방미때 당시 마이클 브라운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국내기업인들과 함께 뛰었다.

한독상공회는 아직 진출하지 않은 독일기업들을 초청, 투자설명회를
개최키로 했다.

이들은 주로 시장개방에 몰두해 왔으나 올들어선 노무관계 등 국내경영
환경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투자유치와 관련된 것들이 많아 정책반영도 잘 된다.

EU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누가 건의하든 기업활동에 도움이 되면 결국
한국경제에 이롭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국내경제단체들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무임승차"하는 득을 보기도
한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IMF체제이후 같은 얘기라도 국내단체들이 할 때와
외국인단체에서 할 경우 정부반응이 다르다"면서 "정부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일종의 역차별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외국인단체에서 대정부 건의가 나오고나서 얼마되지 않아
국내 경제단체가 비슷한 것을 넌지시 내놓기도 한다.

부실기업의 퇴직금지급문제 등 노동계를 자극할수 있는 민감한 문제들의
경우에 그런 식이 많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투자유치에 경제의 사활을 걸고 있는데 이미 들어온
이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외국기업이라도 토착화되면
국내경제단체의 핵심멤버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문호개방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 이동우 기자 lee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