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와이퍼시스템은 너무 억울하다.

미국의 빔사 등으로부터 1백50만달러 어치의 신용장(LC)을 받고도 부도를
냈다.

정부가 수출기업에 대해선 과감한 지원책을 펴겠다고 했지만 일선기관의
수출지원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 회사 김인규 사장(43)은 "LC 등을 바탕으로 지난 2월초 수출입은행으로
부터 15억원의 대출추천을 받았으나 이를 바탕으로 보증을 해주는 신용기관
은 없었다"고 말했다.

부도는 그래서 났다.

지난 4월20일 일이다 이 회사는 반월공단 8블럭에서 1백50종의 자동차용
와이퍼를 생산한다.

67개의 특허권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오토선과 말레이시아 마코 등엔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수출할
정도다.

기아자동차에 대한 납품규모가 줄어드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긴 했으나
부도에 떠밀릴 정도는 아니었다.

김 사장은 "일선 금융기관의 안이한 대처가 꼭 살아야 할 기업들을 벼랑
으로 내몰았다"고 말한다.

부도가 났음에도 이 회사는 이달들어 우즈베키스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수출주문이 꾸준히 들어온다.

그러나 수출주문은 "그림의 떡".

금융거래가 정지된 회사에겐 적어도 그렇다.

반월공단엔 동양와이퍼와 비슷한 형편에 놓인 업체들이 한두곳이 아니다.

자동차 프레임을 생산하는 동양기공.

기아사태의 여파로 지난 3월 부도를 낸 이후 화의를 신청해 놓고 있지만
결정이 계속 미뤄지는 바람에 수출주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스프링을 생산하는 삼목강업, 오일펌프를 만드는 명화공업 등 반월공단내
40여개 기업도 이와 비슷한 처지다.

20일 이규성 재경부장관이 반월공단을 찾았다.

중소기업의 애로를 현장에서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업계는 어려움을 알아보기 위해선 잘돌아가는 기업을 방문할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꼭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업체, 더 나아가선 도산업체의 굳게 닫힌 문앞에
라도 가봐야 느끼는게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문제는 또 있다.

이 장관이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했다쳐도 일선금융기관 창구에서 말을
듣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29일 이 장관은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상환기간을 전면 연장해
주겠다고 발표했었다.

지시가 떨어진지 20여일.

"여전히 어느 은행 가릴것 없이 창구에선 중소기업 구조개선자금을 연체한
기업에 상환을 강요하기에 바쁘다. 한술 더 떠 연 17%였던 구조자금의
연체금리를 이달부터 20%로 슬그머니 올려버릴 정도다"(삼홍공업기계 사장)

"정책자금을 지원받고서도 20%의 금리를 물어야 한다면 누가 기업을 할
의욕을 가지겠는가"(한기윤 기업중앙회 조사부장)

"은행퇴출 여파로 아직까지 인수은행들이 대출을 해주지 않거나 LC를
제대로 개설해 주지 않아 피해가 심각하다"(김원호 케이피 사장)

세계은행(IBRD) 자금을 재원으로 한 벤처창업자금도 그렇다.

이 자금이 순수 창업자에게 지원된건 10%미만.

돈을 떼이지 않기 위해 매출실적을 가진 기업위주로 지원되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벤처자금"이 아니라 보통의 기술개발
자금으로 변질된 셈이다.

이 장관 등이 중기현장을 살피고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반월공단을
찾았지만 공단사람들은 "대통령이 한번 찾아와 봤으면 한다"(김태공
성광전기사장)

이달초 부도를 낸 남성공업물산의 정성우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있는 중소기업이라면 무조건 살려야 하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악조건하에서 여태까지 살아 있다면 그것만으로
경쟁력은 입증된 셈"이라는 것이다.

< 이치구 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