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담당 외교관 맞추방조치로 경색됐던 한국-러시아 관계가 양국 정보기관
간의 물밑협상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일단 정상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협상 막바지에서 러시아 정부가 주러 한국 정보요원 5명에 대해 추가 철수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협상이 다시 꼬이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돌기도 했으나 우리 정부는 이같은 요구를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양국 정보기관은 물밑협상에서 상대국 주재 정보담당 외교관의 숫자를
동수로 유지하고 그간 마찰을 빚어왔던 정보입수 방식도 개선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같은 원칙에서 본다면 정부가 러시아측의 한국 정보요원 추가철수 요청을
선선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정부가 이번에 러시아측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을 취함으로써 우리측이 애당초 잘못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러 관계를 자꾸만 외나무다리로 밀어넣어
양국 모두에게 득될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두나라는 역사적 지정학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냉전
종식과 더불어 새롭게 구축된 한.러관계는 많은 분야에서 실질적인 이익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라시아국가임을 강조해온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동아시아
진출과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한국과의 우호관계및 경제협력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측에서 보면 한반도의 평화유지와 남북통일을 위해선 러시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통일후에는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돼 한.러 우호관계유지는
안보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러시아는 유럽진출의 교두보로 활용될 수 있을 뿐더러
러시아 극동지역의 풍부한 천연자원은 한국의 새로운 자원공급원이 될 수
있다.

세계 최고수준의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을 지닌 러시아와의 과학기술협력은
동시에 국가경쟁력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러시아가 초강대국의 지위를 상실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자존심과 감정을 사려깊게 살피는데 소홀했던 감이 없지 않다.

러시아가 최근 한국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외교적 행태는 그에 대한
섭섭함과 실망감의 표출일지 모른다.

어찌됐든 양국은 지금 불필요한 감정싸움으로 국가적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두나라 모두 IMF의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상호보완적 협력
관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정보요원 맞추방으로 빚어진 양국간 감정싸움은 이쯤에서 끝내야 하며
늦어도 오는 26일 마닐라 아세안안보포럼(ARF)에서 있을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우호 선린관계가 깨끗하게 복원돼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