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가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원인의 하나로 "일본이
저축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낭비"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두가지다.

첫째는 일본인들이 필요이상으로 지나치게 저축을 많이 한다는 것.

일본의 국민총생산(GDP)대비 가계저축율은 13-14%대로 미국의 4%에 비해
3배 수준.

돈을 쓰지 않고 저축만 해 내수를 위축시킨다는 논리다.

실제로 일본의 불황이 갈수록 심해지는 데도 가계저축율은 오히려 지난
96년 12.1%에서 작년에는 13.6%, 올해는 14.1%로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저축은 악덕이고 소비는 미덕"이라는 케인즈의 오래된 명제가 일본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일본 정부도 최근에는 대장성이 소비증대 캠페인을 벌이는 등
국민들에게 소비증대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습관을 떨쳐 버리기 어려워선지 일본중앙은행은 지난달
저축콘테스트를 실시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저축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의 두번째 의미는 말 그대로 저축한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저축을 "얼마나" 하느냐 못지 않게 저축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데 일본에선 저축으로 모아진 자금이 비효율적으로
투자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은 지난 93년 이후 1억6천만달러를 메모리 반도체에
투자했는데 이 사업은 요즘 거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인텔, 램버스 등 미국업체들은 마이크로프로세서나 소프트
웨어분야로 투자를 돌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도쿄만에 건설된 터널과 교량들도 비효율적 투자의 대표적 사례다.

무려 53억달러를 투자한 이들 터널과 교량은 1일 통행량이 당초 예상치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이밖에 도쿄시내에 남아도는 사무용 건물 등도 일본의 저축이 낭비됐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일본의 저축이 비효율적으로 투자되는 것은 일본의 은행들이
미국은행에 비해 주주나 금융감독당국의 감시를 덜 받는데다 금융기관간
경쟁도 덜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융자금은 종종 대장성 관리나 은행고위층과 친한 회사에 나갔고
그 결과로 6천억달러의 부실채권이 쌓였다.

일본의 저축이 안고 있는 이같은 문제점에 대해 스탠포드대학의 마이클
보스킨 교수는 "자동차가 빨리 달리려면 좋은 타이어와 함께 좋은 엔진도
필요하다"고 꼬집는다.

일본이 저축에만 촛점을 맞추는 것은 마치 "타이어가 좋기 때문에 빨리
달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