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의 "스크린쿼터제 무용론"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을 만나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건의한데 이어 22일에는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를 다시 강조했다.

한 본부장의 주장은 한마디로 "스크린쿼터제는 한국영화산업을 보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시장개방의 대세에도 안맞는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란 극장이 연간 상영일수중 일정기간(최대 1백46일)은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하는 제도로 지난 66년 제정됐다.

이 제도의 유용성에 대한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미국과의 통상교섭이 있을 때마다 폐지론은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다만 한국영화계의 영세성과 헐리우드영화에 길들여진 관객의 입맛 등을
고려할 때 아직은 유지돼야 한다는게 일반적 정서였다.

이같은 점에서 볼 때 대외통상정책의 수장이자 대표적 시장개방론자인
한 본부장의 폐지론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점에서 무엇이 미래지향적인
것인가를 고려하는 안목은 부족했다는게 영화계의 시각이다.

영화, 또는 더 넓게 문화는 시장경제논리에 지배될 수 없다는 원론적
이야기가 아니다.

저임금에 기초한 대량생산체제가 무너져버린 우리경제상황에서 향후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토대는 문화에서 나오는 소프트경쟁력이며
그 선봉은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는 새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비디오게임 애니메이션 등 영상벤처산업의
모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은 헐리우드의 엄청난 공세속에서도 자국영화에
대한 지원을 늦추지 않는다.

한 영화인은 "IMF이후 한국영화의 제작편수가 줄어 어차피 스크린쿼터를
채우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런 발언이 나와 유감"이라며 씁쓰레했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