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교통부 최종수 건설경제심의관.

올들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 각종 주택경기 부양책을 대할 때마다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자신이 주택정책과장 시절 밤을 새워가며 만들었던 각종 정책들이 이들
부양책에 의해 하나 둘 실현되가고 있어서다.

분양가 규제, 미등기전매, 재당첨 제한기간 등이 대표적인 사례.

이들 정책은 지난 80년대말 망 구병으로 치부되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었다.

그 당시 주택시장은 정부가 "아파트 2백만가구 공급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하룻밤사이에 아파트값이 20~30%씩 오를 정도였다.

주무과장이었던 최심의관으로서는 투기억제를 위해 칼을 뽑지 않을 수
없었다.

투기성 주택수요 진정을 위해 미등기 전매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고 거래가
잦은 사람은 국세청에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투기에 따른 부동산가격 폭등을 막는데 모든 정책역량이 집중됐다.

그 결과 부동산 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됐고 최심의관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경제전반에 주름살이 깊게 패였고, 이로인해
부동산시장은 붕괴 일보직전의 위기에 처해있다.

투기억제보다는 오히려 투기를 부추겨 부동산경기를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공감대까지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격세지감이다.

사실 부동산 투기억제정책들이 무대밖으로 사라지는 것에 대해 과거의 정책
담당자들은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부양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부동산 정책이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는데는 목소리를 같이 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환경이 변하면서 정책입안자들의 철학이 이처럼 바뀐 것이다.

그 변화의 핵심은 전면 완화쪽이다.

그 대상도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린 주택시장에서부터 토지 건축 도시
계획에 이르기까지 부동산 전 분야에 걸쳐있다.

수십년을 이어온 정부정책의 기본틀이 새로 짜여지는 셈이다.

주택의 경우 양도소득세 일시 면제, 미등기 전매, 청약예금 금액변경 등
평상시 같으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도 남을 정책이 양산되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선 "투기라도 일어나야 되지 않느냐"(강교식 건교부
주택정책과장)는 반문까지 나올 정도다.

건축분야도 이에 못지 않다.

그동안 논란을 빚어왔던 주거용 오피스텔이 사실상 허용됐고 건물 용도변경
절차도 간소화됐다.

오랜 기간의 민원사항이 한 순간에 해결된 것이다.

"건물안전이나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한 건축규제를 최대한 풀겠다"(이재옥
건교부 건축과장)는 게 기본구상이다.

토지정책 변화도 획기적이다.

그동안 토지정책은 투기억제와 외국인 토지소유 제한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이 분야도 변화의 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선 토지거래허가구역 전면 해제로 토지취득에 대한 제한이 없어졌고
토지개발공급업과 임대업도 외국인들에게 전면 개방됐다.

외국인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아무런 제약없이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동산거래 활성화를 위해선 돈 많은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는 방법밖에
없다"(김세찬 건교부 토지국장)는 말은 부동산 패러다임 변화가 정부정책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증명해준다.

이러한 정책당국의 자세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규제완화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양도세 면제 등 주택수요 진작을 위해 발표된 각종 정책들이 신규
미분양 주택에 국한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실제적인 효과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좀더 과감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동성 주택산업연구원장은 "분양가자율화, 양도소득세 한시면제 등 지금
까지 나온 규제완화책들이 IMF한파가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한 지난
연말께 나왔으면 그 효과가 훨씬 컸을 것"이라며 "업계나 수요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정책변화의 속도를 좀 더 빨리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송진흡 기자 jinhu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