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미국인 화가 새뮤얼 모스(1791~1872)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미술연구를 끝내고 뉴욕행 기선 슈리호에 승선해 귀국길에 올랐다.

선상에서 그는 전류의 강약장단을 이용해 원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전신기를 만들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 뒤 그는 전신기 제작에 몰두하는 한편 전보문 전송을 숫자로 하는 것이
쉽겠다고 생각해 약 8천단어를 표현할 수 있는 점부호로 은어표를 만들었다.

이렇게해서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모스부호"다.

이 모스부호가 처음 사용된 것은 1843년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의 전신개통
때였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란 성서의 한 구절이었는데 당시의 감격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처음에 전신은 전보나 철도의 안전운행수단으로 사용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해 1852년에는 유럽전체의 전신망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고작 비둘기를 이용하던 통신방법에 비하면 인류의 혁명적 통신수단이었다.

뒤이어 1876년에 미국의 벨에 의해 전화가 발명되고 이탈리아의 마르코니는
1890년 무선전화를 발명해 당시 최대 교통수단이었던 선박의 유일한 통신
수단이 됐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이후 열린 국제해양안전회의에서 50인승이상
배에는 무선전신기구를 반드시 갖추도록 규정한 이래 90년대이전까지만 해도
무선전신은 "해양구조의 일등공신"이었다.

우리나라에 전신이 처음 도입된 것은 모스가 전신을 발명한지 40여년 뒤인
1885년 한성전보총국이 개국해 서울~인천간의 전신업무가 시작되면서부터다.

그러나 57년 전신의 자동송수신이 가능해지기 시작하고 전화가 보편화되면서
무선전화까지 등장하자 모스부호는 점차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국제해사기구(IMO)가 내년 1월부터 선박에서의 모스부호사용을 폐지할 방침
이라고 한다.

영국해협에서 증기선 엘브호의 조난소식을 알린 첫 타전이후 꼭 1백년만의
일이다.

컴퓨터와 인공위성에 밀려 퇴출되는 모스부호의 추억은 이제 재난영화에서나
되살릴 수 있을 것 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