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리리리"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밑을 지나는 유람선 위에서 넋을 잃고 강물을
바라보던 손종근(37.가명)씨는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과장님, 됐어요. 됐다구요"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양정수(가명)대리였다.

"양대리, 뭐가 됐단 말이야"

"사우디아라비아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따냈습니다"

"정말이야, 잘됐어. 우리가 멋지게 해냈군"

손 과장은 자기 회사가 사운을 걸고 추진하던 사우디프로젝트 입찰서를
제출하고 엊그제 이곳으로 휴가를 왔다.

이곳은 10여년전 출장길에 지금의 부인을 만난 추억의 장소다.

IMF시대에 외국으로 휴가를 떠난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는 않았으나 5년전
부터 준비해온 결혼 10주년 기념여행이라 큰맘먹고 떠나왔다.

아홉살 난 딸과 네살배기 아들 손을 잡고서.

손 과장이 이곳 유람선 위에서 서울 본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은
이동전화회사의 로밍서비스 덕이다.

한국에서 쓰던 이동전화 단말기를 그대로 갖고와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떠나기 전날 서비스이용을 신청, 새 번호를 받아 미국에서도 이동전화를
마음대로 쓰고 있다.

요금은 나중에 서울가서 내면 된다.

손 과장은 유람선이 선착장에 닿자마자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간단히 샤워를 마친 그는 서둘러 갖고간 노트북컴퓨터를 켰다.

우선 인터넷에 접속했다.

서울에서 자신이 사용하던 ID를 그대로 쓴다.

한국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가 인터넷로밍서비스를 제공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E메일을 열어보니 모두 8건이 들어있었다.

그중 3개에 대해 간단하게 답신을 보내고 양 대리에게 사우디 프로젝트에
대한 후속작업을 잘 챙기라는 지시를 보냈다.

그는 자신이 미리 예약해둔 레스토랑의 홈페이지에 접속, 저녁메뉴를
골랐다.

손 과장이 묵고 있는 곳은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은
아담한 호텔이다.

실내가 깨끗하고 값도 비교적 저렴했다.

손 과장이 이 호텔을 찾아낸 것은 순전히 인터넷 덕택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머물 곳을 고르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발견했다.

물론 예약도 인터넷으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용할 자동차도 인터넷에서 골라 예약했다.

둘러볼 곳을 고르는 일도, 가는 길을 익히는 일도 인터넷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저녁을 마친 손 과장은 저녁 10시께 호텔방에서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서울에 계신 부모님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였다.

전화기 옆에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전화카드를 놓고 카드국제전화 접속번호
1-800-822-8256과 카드번호 290-1221-208#-0을 하나씩 또박또박 누른뒤 서울
지역번호(2)와 집 전화번호 다음에 #를 눌렀다.

그냥 호텔 전화로 일반 국제전화를 거는 것보다 20자리정도는 더 눌러
불편하지만 그만큼 요금이 싸서 좋다.

손 과장은 다시 전화기를 들고 같은 부서 김준식(가명)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대여섯번 울리더니 김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간 김 대리는 설악산 중턱을 오르다가 휴대폰으로 손 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에 가있을 손 과장의 전화여서 깜짝 놀랐다.

"과장님, 웬일이세요. 미국에서 벌써 돌아왔어요"

"아니, 내일 출발해. 사우디 프로젝트 후속작업 때문에 금요일쯤 출근할
생각이야"

"알았습니다. 저도 그때부터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김 대리가 설악산 중턱에서 휴대폰으로 자신의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통신의 "착신통화 전환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집이나 직장으로 걸려온 전화를 휴대폰으로 연결되도록 해놓고 휴가를 떠난
것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집이나 회사로 걸려온 전화를 지방에 있는 호텔이나
콘도전화로 받을 수도 있다.

무선호출기로 연락받는 것도 가능하다.

김 대리는 콘도에 돌아와 자신의 "연락방"으로 전화를 했다.

친구가 다음주에 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을 넣어두었다.

그는 한국통신의 "141 연락방서비스"를 개인비서처럼 쓰고 있다.

개인적인 사회활동이 많은 그는 회사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이
서비스를 신청했다.

한국통신에 연락방을 만들어두고 친구들과 음성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김 대리는 한국통신의 "텔레캅서비스"도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휴가때 빈집에 도둑이 들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이 서비스는 외부인이 침입하면 일반전화선을 통해 관할경찰서 상황실에
바로 알려준다.

가입자의 위치와 상황정보까지 경찰서로 전달돼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순찰차가 즉시 출동하게 된다.

맞벌이로 부부가 함께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 김 대리는 이 서비스를
1년 전부터 이용하고 있다.

비용은 한달에 2만7천원.

저녁을 마친 김 대리는 부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콘도 옆 광장에서 이동전화회사가 판촉행사로 개최한 "서머 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요즘 인기절정인 유승준의 "나나나"가 휘황찬란한 조명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첨단 정보통신 서비스와 함께 하는 여름 휴가는 결코 외롭지 않다.


[ 특별취재팀 ]

정건수 기자 kschung@
문희수 기자 mhs@
손희식 기자 ksshon@
김철수 기자 kcsoo@
조정애 기자 jcho@
양준영 기자 tetrius@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