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영 <홍익대 교수/경제학>

작금의 노사관계는 매우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형국에 빠져있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위해 마련된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불참속에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두 위원장이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은행및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실질적 협의, 부당 노동행위의 근절등 현안문제해결,
그리고 노사정위원회의 위상강화를 요구하며 노사정위원회불참을 선언한
지난 10일이후 노사정위원회는 개점휴업상태에 들어갔다.

이 기간중에도 민주노총이 이끄는 파업과 시위는 국내외의 이목에도
아랑곳없이 되풀이됐다.

14일 민주금속연맹의 파업은 15,16일 공공부문의 파업으로 이어졌다.

또다시 22일에는 금속연맹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14일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1백여명의 파업주도자에 대해 체포영장을 내리고 일부 주도자를 실제
구속하는 등 강경한 태도로 대응했다.

이런 가운데 23일 노정이 10개 현안 가운데 삼미특수강문제해결등
8개항에 가까스로 합의하고 총파업을 유보한 점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노정간 합의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끈 것일 뿐, 노동현안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특히 민주노총은 이번 노정협상에서 타결되지않은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중단과 금융.공공부문의 구조조정문제로 언제든지 재파업에
들어갈 수있다는 태도를 보이고있다.

정리해고 구조조정문제는 노정이 협상으로 쉽사리 해결될 수있는 사안들도
아니어서 파업재개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있다.

더구나 노동계의 파업유보가 있자마자 사용자측이 노사정위원회의 불참을
선언해 노사정위원회의 정상가동은 더욱 불투명한 상태다.

현장의 노사관계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17일 현대자동차에서는 노조의 임금삭감제시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은
2천5백68명의 정리해고와 9백명의 휴직이 불가피함을 밝히고 그 명단까지
공개했다.

해고대상자와 가족등의 집단시위로 회사는 휴업에 들어갔다.

전국단위에서 보거나 주요 현장단위에서 보거나 노정 또는 노사가 서로
강경자세를 보이고있어서 마치 하나의 선로위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부터
달려오는 두대의 기관차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마주보고 달려오는 두 기관차의 충돌을 피하자면 어느 한쪽이 자세를
바꾸어 다른 선로로 진입하든지 양쪽이 속도를 늦춰 서서히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위기극복의 최우선명제이고 보면 결국 민노총이 파업과 시위라는
장외투쟁을 버리고 한국노총과 함께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여 대화와
협의를 통해 실업의 최소화와 실업대책을 찾는 것이 가장 소망스런 길이다.

물론 이익집단이라는 노조의 생리에 비추어 상부단체로서도 무엇인가
행동을 보이지않을 수없다는 조직관리상의 부담도 이해되지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노조의 움직임이나 노사정위원회의 파행운영과 관계없이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는 점을 노조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IMF(국제통화기금)구제금융을 받았거나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경제위기에
처했던 국가들이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회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노사관계의 구도는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눠 볼 수 있다.

호주나 멕시코의 경우에는 변화를 수용하는 노조와 끈질긴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반면 노조가 변화를 거부하고 강경자세를 견지하던 영국에서는 대처수상이
노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해 성공을 거두었다.

정부인수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한 현정부는 사회적 합의방식을
택한 셈이다.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의 즉각 도입에 합의한 것은 놀라운
성과였다.

그러나 이후 민주노총이 보여준 행보는 많은 실망을 안겨다 주었다.

이제라도 민주노총등 노동계는 노사정위원회에 조건없이 복귀해 현재의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방안을 찾기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만약 노동계가 사회적 합의방식을 버린다면 정부도 더이상 노조에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

단호한 정책구사를 검토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않았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7일자 ).